회개 결단과 삶의 열매는 거듭난 증거입니다(눅 19:1-10)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죄인 취급받는 세리였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기에 더 많은 부를 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실 때, 삭개오도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작은 키와 몰려든 인파로 인해 그는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자 했을 뿐인데, 예수님은 특별한 관심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집’(7절)에 기꺼이 머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죄인일 뿐이지만, 예수님께는 구원 은혜가 필요한 한 영혼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려는 열망은 내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나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그 마음속에는 채울 수 없는 커다란 갈증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부터 그런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 목적은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고 함께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그 갈증은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죄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길입니다. 다른 길들이 아무리 넓고 좋아보여도 그 길들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좁고 힘들어 보여도 오직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는 어떤 삶을 살겠다고 결단했나요?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만일 남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삭개오는 직업을 바꾸는 대신, 침례 요한의 가르침대로(3:10-14) 직무를 올바르게 수행하는 쪽을 택합니다. 그의 결단은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던 부자 관리의 태도와 대조됩니다(18:18-23).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임했음을 선포하시고, 그가 멸시받는 죄인이 아니라 당당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에 들어가기가 어려운데(18:24-25), 삭개오는 ‘회개한 부자’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은 흠 없는 의인이 아니라 잃어버린 죄인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회개하고 돌아온 한 영혼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 앞에 내가 기꺼이 포기할 것과 결단할 것은 무엇인가요?
잃어버린 바 되었던 우리를 주님이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찾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애써 주님 앞에 포기하고 결단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무엇인가 큰 희생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착가한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한 것은 죄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 끝에는 멸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결단한 것은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모든 사실들을 믿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결단마저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힘을 주셔서 할 수 있었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한없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내가 큰 희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나의 눈을 열어 주셔서 사실을 사실로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찾아와 주셔서 하나님께 이르는 나의 길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길이 아닌 오직 주님만이 나의 생명의 길인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