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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징을 요구하는 악한 세대와 비워진 마음의 위험(마 12:38-45)
38 그 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표징을 보았으면 합니다."
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표징 밖에는,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땅 속에 있을 것이다.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43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왔을 때에, 그는 쉴 곳을 찾느라고 물 없는 곳을 헤맸으나 찾지 못하였다.
44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 하고, 돌아와서 보니, 그 집은 비어 있고, 말끔히 치워져서 잘 정돈되어 있었다.
45 그래서 그는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딴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거기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다(마 12:46-50)
46 예수께서 아직도 무리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와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었다.
47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선생님과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습니다."]
48 그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49 그리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고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의 어머니와 나의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말씀묵상>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미 수많은 기적을 보았음에도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믿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고 판단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표징은 그들이 원하는 하늘의 기적이 아니라 요나의 표징,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회개했지만, 이 세대는 요나보다 크신 예수님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악한 영이 떠난 후 마음이 비어 있으면 더 악한 영이 들어와 그 사람의 마지막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이는 도덕적 변화나 종교적 정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마음이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영적으로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표징을 요구하는 불신앙과 회개 없는 종교가 결국 더 큰 어둠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가족이 오셨다고 알렸지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고 물으시며 새로운 가족의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은 손을 들어 제자들을 가리키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혈연이나 종교적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예수님의 가족을 결정한다는 선언입니다. 표징을 요구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세대와 달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예수님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는 참된 가족입니다. 예수님은 불신앙과 순종, 비워진 마음과 성령으로 채워진 마음, 종교적 외식과 참된 제자됨을 강하게 대비시키며, 우리에게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 묻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하며 불신앙 속에 머물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주어진 말씀과 은혜 앞에 순종하고 있는가. 내 마음은 비어 있는 종교적 공간인가, 아니면 성령으로 채워진 하나님의 집인가. 나는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참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를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족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마음이 표징을 요구하는 불신앙이 아니라 말씀 앞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채워지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제 마음을 채우셔서 비워진 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악한 것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예수님의 참된 가족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성령의 역사를 왜곡하는 죄와 예수님의 분명한 경고(마 12:22-32)
22 그 때에 사람들이, 귀신이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시니, 그가 말을 하고, 보게 되었다.
23 그래서 무리가 모두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
2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이 사람이 귀신의 두목 바알세불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할 것이다."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지면 망하고, 어느 도시나 가정도 서로 갈라지면 버티지 못한다.
26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갈라진 것이다. 그러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 있겠느냐?
27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에게 왔다.
29 사람이 먼저 힘 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 어떻게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있느냐?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 수 있다.
30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든지, 무슨 신성 모독적인 말을 하든지, 그들은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32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겠으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마음이 드러나는 말의 열매와 최후의 심판(마 12:33-37)
33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35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두었다가 악한 것을 낸다.
3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심판 날에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37 너는 네가 한 말로, 무죄 선고를 받기도 하고, 유죄 선고를 받기도 할 것이다."
<말씀묵상>
예수님은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셨고, 사람들은 그 기적을 보고 “이분이 다윗의 자손이 아닐까?”라고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놀라운 치유를 보면서도 마음을 닫고,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무너뜨리며,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없고,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사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셨다는 증거이며,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그들 가운데 도래했다는 표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성령의 역사를 고의적으로 왜곡하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고하십니다. 성령의 일을 사탄의 일로 돌리는 것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을 거부하는 상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거스르는 말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닫아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상태로 들어가는 인간의 완고함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나무와 열매의 비유를 통해 마음과 말의 관계를 설명하십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는 열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말은 성령의 역사를 왜곡하고 예수님을 정죄하는 독한 열매였고, 이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닫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시며, 말이 가벼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드러내는 증거임을 강조하십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 안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결국 우리의 말이 우리를 의롭다 하거나 정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말조심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진리로 채워져야 말도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성령의 역사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내 말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드러내는가, 아니면 정죄와 왜곡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내 마음은 예수님을 향해 열려 있는가, 아니면 바리새인들처럼 완고함 속에 갇혀 있는가? 예수님은 성령의 일을 분별하는 마음과 생명의 말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마음이 성령의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갖게 하옵소서. 제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정죄가 아니라 생명과 진리의 열매가 되게 하옵소서. 제 마음 깊은 곳을 성령으로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방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율법의 참뜻을 밝히시다(마 12:1-8)
1 그 무렵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삼상 21:6
4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오직 제사장들 밖에는, 자기도 그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5 ㉡또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민 28:9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 ㉢호 6:6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하나님의 종, 온유한 메시아의 길(마 12:9-21)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서,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다.
10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그것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그것을 잡아 끌어올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13 그런 다음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미니, 다른 손과 같이 성하게 되었다.
14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15 그러나 예수께서 이 일을 아시고서, 거기에서 떠나셨다. 그런데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6 그리고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17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8 ㉤"보아라, 내가 뽑은 나의 종, 내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자,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것이니, 그는 이방 사람들에게 공의를 선포할 것이다. / ㉤사 42:1-3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외치지도 않을 것이다.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20 정의가 이길 때까지,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
21 ㉥이방 사람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 것이다." / ㉥사 42:4(칠십인역)
<말씀묵상>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즉시 이것을 율법 위반으로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의 필요가 아니라 규정의 준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이 굶주렸을 때 거룩한 떡을 먹은 사건을 언급하시며 율법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것임을 상기시키십니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에도 일하지만 죄가 되지 않는 이유는 성전이 안식일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 선언하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자 율법의 참된 해석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이며, 그 마음을 알았다면 제자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바리새인들의 회당으로 들어가십니다. 그 회당은 그들의 해석과 권위가 지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안식일에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한 함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을 다시 밝히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악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며 안식일은 생명을 살리는 날임을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선한 행동을 보고도 마음을 닫고, 오히려 예수를 죽일 모의를 시작합니다. 정죄의 종교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불편해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의를 피하여 물러가시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을 고치십니다. 이때 마태는 이사야 42장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사역을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소리 높여 다투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하나님의 종이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폭력이나 강압이 아니라 온유함과 자비로 정의를 세우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정죄와 폭력적 종교성과는 완전히 다른 길입니다. 예수님은 은밀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참된 메시아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이방인들까지 소망을 얻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율법의 규정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보고 있는가? 정죄의 시선이 아니라 자비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가? 예수님의 온유한 방식이 내 삶의 방식이 되고 있는가?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상한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종이십니다. 그분을 따르는 제자는 정죄의 종교를 벗어나 자비의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율법의 규정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보게 하시고 자비를 선택하는 눈을 주옵소서. 정죄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온유함을 본받게 하옵소서. 제 삶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의 자비와 정의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마음 속에서도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는 은혜(마 11:1-15)
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지시하기를 마치고, 거기에서 떠나셔서, 유대 사람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셨다.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3 물어 보게 하였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7 이들이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을 두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두고 성경에 기록하기를,
10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 ㉧말 3:1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12 침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13 모든 예언자와 율법서는,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늘 나라가 올 것을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 예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면,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
15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는 세대와 그 지혜를 드러내는 예수님(마 11:16-19)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17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19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말씀묵상>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신 후, 스스로도 여러 마을에서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때 옥에 갇혀 있던 침례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언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의 기대 속 메시아는 심판과 회복을 강력하게 이루시는 분이었지만, 예수님은 온유하게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요한의 질문은 의심이라기보다, 자신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은 마음의 탄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질문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이것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너의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며, 예수님을 자기 방식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신뢰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요한을 향한 깊은 존중을 드러내십니다. 요한은 흔들렸지만,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완벽한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서 있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요한의 약함은 그의 정체성을 무너뜨리지 않았고, 예수님은 그의 사명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바로 이 세대의 완고함을 지적하십니다. 사람들은 요한을 보고는 너무 금욕적이라고 비난했고, 예수님을 보고는 너무 자유롭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오든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제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의 완고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매로 증명된다고 선언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내 기대와 다를 때 실족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가? 흔들리는 마음 속에서도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흔들림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보게 하시며, 그분의 지혜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기대와 현실이 충돌할 때에도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가 제 방식이 아니라 주님의 방식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마음 속에서도 주님의 지혜를 신뢰하며, 그 지혜가 제 삶에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위험 속으로 보내시지만 버려두지 않으시는 주님(마 10:16-23)
16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그들의 회당에서 매질을 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나가서, 그들과 이방 사람 앞에서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관가에 넘겨줄 때에, 어떻게 말할까, 또는 무엇을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때에 지시를 받을 것이다.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죽일 것이다.
22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23 이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제자(마 10:24-33)
24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제 스승만큼 되고,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충분하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28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0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말씀묵상>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며 그들을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제자의 길은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위험과 긴장이 존재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위험을 숨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정직하게 알려주십니다. 제자는 세상 속에서 지혜롭고 순결해야 하며, 때로는 오해받고, 배척당하고, 심지어는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순간에 말할 것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그들을 대하는 방식이 결국 예수님을 대하는 방식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가 주인보다 나을 수 없으며, 예수님이 비난받고 오해받으셨다면 제자들도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이라는 영광의 선언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거부할 때, 우리는 예수님과 더 깊이 연합된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숨겨진 것이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며,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제자의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고난도, 우리의 눈물도, 우리의 억울함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붙드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그를 시인하겠다.” 제자의 길은 세상 앞에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때로는 오해를 받고, 때로는 외로울지라도,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이 제자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자를 예수님은 하늘에서 인정하시고 붙드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제자의 길을 걷고 있는가. 세상의 시선보다 예수님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시인하는 담대함을 붙들고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를 위험 속으로 보내시지만, 결코 혼자 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오늘도 담대히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두려움이 앞설 때마다 저를 지키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시선보다 주님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어디서든 예수님을 담대히 드러내는 제자로 살게 하옵소서. 고난 속에서도 저를 붙드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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