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stries

 

 

 

앞으로의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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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절
Sep 10, 2017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개역개정,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행하는 의 는 우리를 곧바로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 의 의로 끌어내릴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 려는 욕망은 언제나 행동의 근원인 마음이 아니라, 보여지는 행동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 23:8-11)

하나님 나라의 삶은 얼마나 새로운 모습입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원리를 제시해 주십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가르침은 선행을 감추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그래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내용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간음”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을 행하는 우리의 의도와 목적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사람들 눈에 띈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눈에 띄려고 선을 행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선행을 그 자체 때문에 선을 행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행할 때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가로막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의 숨은 의도는 선행을 통해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보이려고 선행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의 생각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인간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며 그것을 목표로 선행을 한다면 하나님은 정중하게 옆으로 비켜서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가 하나님과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원할 때와 원하지 않을 때를 잘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만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에 반응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하라고 권면합니다(골 3:23). 행복한교회 가족여러분! 우리의 모든 일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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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장 6절
Sep 03, 2017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개역개정, 19:6)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 가? 이 세사에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 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의 대답을 얻기 위해서 온 우주와 전 세계를 창조하시고 통치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우리와 동일하게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물음에 명쾌한 답변을 주신 말씀이 출애굽기 19:3-6절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과 온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며 그들의 존재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의 중간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에게 대하여 할 일이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일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레 10:11). 제사장들을 통하여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올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제사장의 일은 하나님께 백성의 제물을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속죄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사장의 일은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모셔가고 사람들을 하나님께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열방에 전하고, 열방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출 19:6절의 말씀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시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벧전 2:9)

이와 같이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선교의 사명은 해외에 나가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표하고, 세상으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행복한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시고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로 삼으신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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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27절
Aug 27, 201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개역개정, 3:27)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은 침례 를 받습니다. 침례는 주의 만찬과 함께 예수님께서 명령 하신 귀한 예식입니다(마28:19). 먼저 침례는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받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또 침례를 받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이라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합한다는 것과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27절 안에서 그 뜻을 찾자면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말은 또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말의 두 가지 다른 뜻을 갈라디아서 3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갈 3:26절에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가 그를 옷 입음으로써 그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같이 양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침례는 단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모든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받았다는 표지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표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말의 둘째 의미는 갈 3:28절에 나와 있습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침례 받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한 가지 옷을 입을 때 유니폼을 입었다 합니다. “유니폼”이란 말은 “같은 모양”이란 뜻입니다. 다 같은 형태의 옷을 입으면 모두가 하나로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은 모두가 다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으로 침례 받은 이들 사이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라는 것이야말로 곧 하나님나라 그 자체인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이 세상을 향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한교회 가족여러분! 오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하나님과 교회 앞에 공식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침례를 받습니다. 우리 모두 침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됨을 감사하는 시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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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7편 1절
Aug 20, 2017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개역개정, 27:1)

심리학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75가지나 되는 공포증이 있다고 합니다. 예 를 들면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고소공포증, 낮은 곳 을 두려워하는 저소공포증, 전쟁이 일어날까봐 라면 사재기, 휴지사재기, 양초사재기, 산소마스크까지 준비해 두는 전쟁공포증, 그런가 하면 새로운 것은 무조건 싫어하는 신(新)공포증, 그래서 신공포증의 경우는 새 사람이 두려워 결혼도 못하고, 새 집이 두려워 이사도 못가고, 망할까 두려워 새 사업도 시작을 못하는 심리상태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병 걸려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은 다윗이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든 누구에게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걱정이나 두려움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신앙생활에도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걱정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걱정에 빠져버리면 헤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 공포증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다윗은 그의 빛 되시며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시 27:1 )

다윗은 소년시절 골리앗과 마주 서서 싸운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의 키는 2m80cm가 넘는 거인이었고 그가 입었던 갑옷은 57kg이었고 7kg이 넘는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차림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는 띠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손에는 돌을 끼워 던질 수 있는 가죽으로 만든 물매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본 골리앗이 모욕하며 말했습니다.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삼상 17:43-44) 이에 다윗이 응수했습니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삼상 17:45) 그 날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의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여기에 위대한 계산법이 있습니다. 아직도 골리앗 정도의 상대 4명을 쳐 이길 돌맹이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그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넉넉히 이기고 남게 되는 것입니다.

골리앗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한 원수도, 군대도, 질병도, 죽음도, 고통도, 실패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 다윗의 고백이며 노래인 것입니다. 행복한교회 가족여러분 모두 우리의 빛이 되시며 구원이 되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내고 참된 평안과 기쁨을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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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 11절
Jan 15, 2017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개정, 마태복음 23: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도착하셔서 제일 먼저 성전제물과 돈을 바꾸고 희생 제물을 파 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이일로 인 해 성전의 공식적인 책임을 맡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권위와 사역에 대해서 거세게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하신 일들과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일부러 적을 만들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책망하셨던 것은 그들의 개인적인 행위보다도 그들이 굳게 믿고 있었던 그들의 종교체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600여 가지가 넘는 율법의 세부 규정들을 만들어서 내면적인 태도와 동기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그 종교체계를 더 고수하고자 하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결국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스스로를 ‘위선자들’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율법주의 종교체계 안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위를 과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칭찬받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율법학자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규정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을 가르치고 도와야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무거운 짐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도와주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위선을 강하게 책망하시면서 우리들은 오히려 그들과는 반대로 행동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높아지기를 바라지 말고 가장 낮은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행복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더 많은 섬김을 받는 것, 더 많은 사람 위에 서서 군림하는 것을 가치 있는 목표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는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정반대에 있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섬김 받아 마땅하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세상이 지향하던 힘 있는 자, 높은 자가 섬김을 받는 가치와 정면으로 맞서시면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오히려 섬기는 것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섬김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오늘부터 행복한교회 사역박람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써 예수님의 섬김을 배워서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역은 우리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과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능력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로 연약하지만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자리에 직접 서보지 않고서 섬김을 배우기는 어렵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섬기는 자리에 서서 예수님의 섬김을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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