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헌금 (Online Offering)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Ministries

 

 

 

Pray

원인자요 판결자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탄원(욥기 9:25-35)
Oct 19, 2021

욥이 시도해 보려는 고난의 해결책은 어떤 것인가요?

인간에게 삶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욥은 다양한 비유로 삶의 '무상함' 말합니다. 고난중에 그가 느끼는 세월의 속도는 달리는 경주자, 빠른 , 날렵한 독수리보다 빠릅니다(25-26). 그는 속에서 어떤 복도 누릴 없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불평을 잊고 기쁜 얼굴을 만들며 출발을 하고자 다짐해 보지만,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자신을 무죄하다 여기지 않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28). 하나님이 '정죄'하시면 그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29). 일시적 망각이나 인위적 기쁨은 고난의 때에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온전한 해결책은 크신 섭리로 고난을 허락하시고 우리를 단련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고난의 때를 통과하기 위한 최선의 행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때는 바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지않고 멀리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마치 달이 태양을 가려 하늘이 어두워지는 현상인 일식처럼 하나님이 눈앞에서 가려진 것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치 혼돈에 빠져있는 것처럼 느껴질때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무의미해집니다. 삶의 보람이 없어진 것입니다. 고난의 때를 통과하기 위한 최선의 행동은 바로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나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고난을 통과하기 위한 최선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할 있을때 오늘의 고난을 가치 있게 받아들이며 참아낼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난에 대해 공정한 판결자가 없다고 말하는 욥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욥은 자신의 상황을 법정 소송에 비유합니다(32-33). 그는 하나님과 자신이 소송을 벌일 없는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변론을 벌이는 재판을 하실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판결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욥에게 하나님은 사건의 당사자(원인자) 동시에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니 공정하게 판결해 이를 찾을 없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조건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이 막대기를 거두시고 두렵게 하지 않으신다면, 자신도 두려움 없이 말하겠다는 것입니다(34-35). 현실은 욥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의 진술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합니다.

 내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떤 심정으로 기도하나요?

너무나 친밀했던 하나님이 낯선 분으로 느껴질때 욥은 자신의 속마음을 이해해 주고 자신을 위해서 변호해 중재자가 필요하다고 소원했습니다. 욥에게는 그런 중재자가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중재자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곁으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우리가 겪는 고난에 대해 위로하시며 또한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실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욥과 같이 고난 가운데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셔서 우리를 연단해 가시지만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와 함께 모든 고난을 받으시며 우리를 중보하시는 중재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 우리는 삶의 의욕을 잃습니다. 우리의 삶이 무의미해짐을 느낍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중보하시는 메시아께서 이제 우리에게 계시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셔서 우리를 자기와 하나되게 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니 우리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Pray

대항할 수 없는 하나님,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욥기 9:11-24)
Oct 18, 2021

욥이 의로울지라도 하나님께 대답할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능력의 하나님께는 누구도 대항할 없습니다. 욥은 자신의 계시 경험을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앞으로 지나가심' 통해 계시를 경험하지만(4:15), 욥은 그분의 '지나가심' 보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11). 욥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구도 막을 없다고 합니다(12-13). 욥은 자신이 의로울지라도 감히 하나님께 대답(대응) 없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분의 '' 때문입니다. 욥은 단지 심판하실 분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회개를 전제로 구하는 은혜가 아니라, 잘못한 것이 없어도 힘을 가진 재판장에게 구하는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의 적대적 행동을 계속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행동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그때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간절히 간구할때가 있습니다. 당장에 필요한 재정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심각한 질병을 치유해 주시기를, 방황하고 있는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길잃어 버렸을때 나아가야 길을 알려주시기를 간구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때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으신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관심도 없으시고 듣지도 않으시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때로는 침묵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하나님이 반응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관심하신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셔서 그분의 경륜과 섭리로 우리를 위한 하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욥이 자신의 온전함을 거듭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욥은 하나님의 적대적 행동을 직설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폭풍으로 치시고 '까닭 없이' 상처를 깊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는 사탄이 충동해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는 돌릴 틈도 없이 괴로움을 당했으며(18), 하나님의 위력에 눌려 자신의 의로움을 제대로 입증할 길도 없습니다(19-20). 그러나 자신의 '온전함'(순전함) 포기하지 않습니다(21). 그는 심판에는 '온전한 ' '악한 ' 구별이 없다고 하며(22),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간 책임을 '하나님' 돌립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렇게 하는 이가 누구란 말이냐?"(24). 이렇듯 계속되는 욥의 탄식과 질문은 끝까지 하나님을 향합니다. 

나는 욥이 하나님 앞에서 당당했던 만큼 온전하고 정직한 삶을 사나요?

여기에서 말하는 욥의 온전하고 흠이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욥의 믿음을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욥이 완전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주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신 것과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신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인간다운 인간으로 사는 법은 바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가지고 계시는 계획과 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당황스럽고 답답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때 지금 당장은 어려움 가운데 처할 수도 있으나 그것을 견뎌내고 참아내며 앞날을 소망할 있습니다. 거짓과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길을 걸어갈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바라는대로 우리가 원하는대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히려 주님이 예비하신 더 좋은 길이 있음을 믿고 바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이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귀가 항상 주님의 말씀을 향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선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사모합니다.

Pray

옳지만 진실이 아닌 말을 분별해야 합니다(욥기 8:8-22)
Oct 16, 2021

선조들의 지혜에 따르면 악인의 운명은 어떠한가요?

과거 경험이 현재의 모든 의문에 답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빌닷은 선조들의 지혜 전통을 이용해 가지 비유를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전하려는 바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불의한 삶을 사는 자들이 맞을 운명입니다(13). 그들의 운명은 때가 되기 전에 말라 버리는 왕골이나 갈대와 같고(11-12), 거미줄로 지은 집을 의지하는 사람과 같으며(14-15), 급속히 자라 돌무더기에 뿌리 내릴 만큼 강한 같지만 결국 뿌리째 뽑혀 외면당하는 덩굴과 같다는 것입니다(16-19). 이는 시편 1편에서 묘사하는 악인의 운명과도 유사합니다. 현재 상태만 보면, 욥이 맞은 운명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빌닷의 말이 옳은 말에 그치고 진실이 아닌 이유는 욥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깊은 신학적 충고지만 진실이 아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옳은 충고라 해도 맥락에 맞지 않은 말일 때는 옳지 않은 말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맥락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성경을 읽을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맥락과 관계없이 구절을 가져와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생각을 가지고 심지어 그것이 신학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됩니다. 예를 들어서 새가족이 우리교회에 왔을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틀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됩니다. 우리가 뭔가 정의를 내린다고 말할 영어로 'definition'이라고 하는데, 말의 형용사형인 define ‘한정짓다, 정의하다, 규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사람의 모든 부분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도 알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정지어서 말하기보다는 그가 온전한 삶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시는지 먼저 하나님께 묻고 순종해야 합니다. 

빌닷의 말에 따르면 미래 회복을 위해 욥이 선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빌닷도 엘리바스처럼(5:23-26) 욥에게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며 발언을 마무리합니다. 빌닷은 하나님이 순전한 자와 악인을 구별하시고, 삶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욥에게는 기쁨의 삶이 찾아오고 욥을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악인의 장막은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정의와 공의입니다. 그러나 미래 회복에 대한 이러한 전망은 모두 '회개' 전제로 합니다(8:5-6). 욥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웃음을 되찾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악인의 장막처럼 사라지는 운명을 겪을 것입니다. 결국 빌닷의 말은 본래 의도한 격려나 위로가 아닌 욥의 잘못에 대한 정죄와 훈계가 되고 맙니다. 

고난당한 이에게 '회개와 미래의 회복' 원칙을 주장하며 정죄한 적은 없나요?  

“네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라는 말은 "당신 하나님을 찾고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께 자비를 구하면”이라는 말은 "당신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고 정직하기만 하면”이라는 말은 "당신 더럽고 부정직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은연중에 "당신이 지금 고난당하는 것은 당신이 지은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과응보의 논리만으로 고난의 이유를 찾는 사람은 하나님을 폄하하고 모독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5:20)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아픔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인과응보의 신학으로 다른 사람의 고난을 단정하고 정죄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현실에서 겪는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시고 신뢰하게 하시고 고난을 견뎌내게 하소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Pray

교리적 공의의 잣대로는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욥기 8:1-7)
Oct 15, 2021

빌닷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관해 확신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교리적 교훈이나 가르침만으로는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빌닷은 엘리바스보다 강력한 어조로 욥을 비판합니다. 그는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라고 다그칩니다. '언제까지'(7:19) '바람'(6:26) 욥이 탄식하며 언급한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빌닷은 '거센 바람'(2)이라고 하며 욥의 말이 제어할 없이 거칠고 위험천만해 바람같이 사라질 공허한 말임을 드러냅니다. 빌닷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합니다(3). "너는, 하나님이 심판을 잘못하신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수사적 질문은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성도는 절대화된 교리로 하나님의 정의를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이 주는 유익과 더불어 위험성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내용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인과응보의 논리안에 갇혀있는 것처럼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까요? 우리가 인과응보의 논리안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해로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을 나의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55:8-9)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갇혀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확신을 높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보잘 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것이다." 말이 욥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빌닷은 자신의 확신을 욥의 자녀들에게도 적용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욥의 자녀들의 죽음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직 살아 있는 욥에게는 하나님을 찾고 자비를 구함으로 회복을 경험하라고 촉구합니다(5-6; 참조. 5:8). 이어서 유명한 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보잘 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것이다"(7). 욥기 전체를 빌닷의 말은 사실로 증명되지만, 자신이 확신하는 교리의 속에 갇힌 빌닷의 말이 욥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고난에 대한 이해 없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맹목적 신앙으로 치달을 있습니다. 

문맥을 고려한 말씀 묵상이 필요한가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뉘앙스로 그런 말을 했는지 파악해야 본래의 뜻을 이해할 있지 단지 들리는 말을 문자그대로 받아들여서는 됩니다. 마치 누군가가 비꼬며서 "잘났어, 정말!"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마치 자신을 칭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욥기 8:7절을 문맥과 상관없이 구절만 가져다가 인용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태도입니다. 이것은 심지어 하나님을 모욕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성경본문을 우리에게 주셨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내눈에 좋아 보이는대로 입맛대로 성경구절을 문자적으로만 가져다가 생각을 표현하는데 사용한다면 이것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문맥과 상관없이 가져다가 자기 입맛대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이단들입니다. 우리도 이단과 같은 태도를 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높인다고 하면서도 나의 생각과 나의 확신을 높이는 교만을 회개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고 하면서도 생각에 좋은대로 눈에 좋은대로 구절만 가져다가 인용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하게 하소서. 외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우리가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이웃을 바라보며 사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기를 사모하게 하소서.

Pray

극한 고통에서 주권자의 감시와 억압을 느낄 때(욥기 7:11-21)
Oct 14, 2021

욥이 경험한 하나님의 '감시' 어떤 것인가요?(12)

계속되는 고통이 하나님의 감시와 공격으로 느껴질 있습니다. 욥은 영혼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말하지 않고는 견딜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는 하나님께 노골적으로 질문합니다. "내가 바다 괴물이라도 됩니까? 내가 깊은 곳에 사는 괴물이라도 됩니까?"(12). '바다괴물' '깊은 곳에 사는 괴물' 번역된 히브리어 '' '탄닌' 고대 근동에서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던 신화적 바다 동물입니다. 욥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지키심' '감시와 억압'입니다(12). 그는 하나님이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않으시는 이유를 묻습니다. 욥은 안식을 기대하고 잠자리에 들지만, 하나님은 꿈과 환상으로 놀라게 하십니다. 탈출구 없는 상황에서 욥이 바라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입니다. 

나는 향한 하나님의 '지키심' 인도와 보호인가요, 감시와 억압인가요?

하나님은 징벌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시기 위해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극심한 고통을 겪다보면 하나님을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나의 잘못을 찾아내어 벌하시려고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시는 같이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마치 꿈속에서조차 나를 감시하시는 분처럼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감시하고 억압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를 지으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시고 경험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빚어가십니다. 우리 또한 욥과 같이 정직하게 하나님 아버지앞에 우리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그분께 답을 구하는 것이 때로는 불경해 보일지라도 오히려 건강한 신앙의 태도입니다. 

시편 8 4절을 인용해 욥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17-18)

막히는 감시를 경험하는 욥은 하나님께 자신을 떠나시길 요청합니다.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16). 이는 하나님의 관심과 개입을 촉구하는 시편의 내용과는 정반대입니다. 욥은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을 감시하시는 이유를 묻습니다(17-19). 여기서 시편 8 4절에 대한 풍자적 개작이 나타납니다. 욥은 보잘것없는 인간을 귀히 여기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측면이 돋보이게 합니다. 욥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는 참을 없는 억압과 영속적인 감시입니다. 욥에게는 하나님의 떠나심이 안식이요 구원입니다. 욥은 악과 과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자신에게는 나타나지 않는지 반문하며 하나님의 즉각적 행동을 촉구합니다(21). 

하나님이 잘못을 크게 문제 삼으시는 때는 언제인가요?  

욥이 고백한 것처럼 인간은 한계안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유한한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에 하나님과 같이 완전한 존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 온전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온전함이란 하나님 분만을 사랑하며 그분의 뜻을 사모하고 그분과 함께 교제하는 삶입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재물과 자녀와 건강과 명예를 사랑한 것이라고 참소합니다.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아시기에 그에게 시련을 허락하셔서 욥에게 있어서 이러한 신앙의 본질을 깨닫고 누리는 자리로 인도해 가십니다. 현재 엄청난 시련가운데서 욥이 느끼기에는 하나님이 그의 잘못을 크게 문제 삼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이것이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선물이요 인도요 보호이신 것을 깨닫게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때때로 우리속에서 터져나오는 감정적이고 불경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부르짖음까지도 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한한 우리의 생각으로 주님을 오해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심은 우리를 감시하고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인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 우리의 구원이요 우리의 천국인 것을 믿고 기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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