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헌금 (Online Offering)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Ministries

 

 

 

Pray

약속의 말씀을 이루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롬 9:1-13)
Aug 12, 2020

복음을 거절하는 동족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심경은 어떠했나요?

전도는 한 영혼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바울은 동족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수모와 거절을 당했습니다. 유대인은 선택받은 선민이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죽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동족을 향한 애틋함으로 복음전파를 계속합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 전도자의 두 가지 자세를 배웁니다. 하나는 사랑의 마음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서 분노 대신 슬픔을 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미워하거나 폄훼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라는 것과 그들이 지닌 특권을 인정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대상일수록 사랑의 마음, 존경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가족과 친구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까요?

정말 하늘나라가 있고, 지옥이 있나요? 그것을 믿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내게 큰 근심과 고통이 있다는 것은, 지옥의 실체를 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현실을 알기에, 그 고통을 알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민족이 그곳에 가는 것이 맘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내가 지옥에 가고 내 백성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매순간마다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가?’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는 교회는 교회일 수 없습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는 교회는 친목단체일 수는 있어도 교회는 아닙니다. 아무리 멋있는 교회의 이름과, 수많은 교인들이 몰려들고, 멋지고 웅장한 예배당이 있다고 해도, 그 안에 영혼에 대한 타오르는 사랑과 열정이 없다면 이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이야기는 하나님의 어떤 면을 잘 보여 주나요?

간절히 간구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 뜻을 깨닫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아님을 이스마엘을 통해 설명합니다. 둘 다 육신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이룰 상속자로 이삭을 부르셨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고 에서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택하셨기에 그들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누리는 구원은 내 공로인가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가요?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모든 일들이 다 어려워지고 있고, 하나님의 역사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계속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갖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서, 우리 가정을 보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소망을 갖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수고와 땀을 흘리며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형제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내놓으며 간구했던 바울의 모습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우리의 간구하는 모습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빚진 자로서 믿지 않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Pray

하나님 사랑 덕분에 넉넉히 이깁니다(롬 8:31-39)
Aug 11, 2020

바울이 던진 다섯 가지 물음은 무엇이며 그 답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사랑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안정된 삶의 근거입니다. 바울은 다섯 가지 물음을 던지고 답합니다. 이 물음들은 모두 하나님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고발하는가? 누가 우리를 정죄하는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31절)이라는 전제 앞에서 분명해집니다. 즉, 우리를 대적할 존재가 없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고발하지 않으시고, 누구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살얼음판을 걷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을 의지해 담대히 구원의 길을 걷는 자입니다. 

다섯 가지 물음 가운데 내가 고민하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로마서는 복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입니다. 올바른 행실로 선을 행한 사람에게가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는 여정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선행으로 시작해서 선행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다섯 가지 질문들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흔드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강력한 확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신앙이 변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모든 일에서 우리의 승리를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고난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삶에 있었던 수많은 ‘환난, 곤고,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협, 칼’이라는 단어로 묘사합니다(35절).일반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기고도 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른니코멘’은 ‘가장 영광스럽게 이기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덕분입니다. 죽음, 삶,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힘입어 살아가는 자는 모든 일에서 가장 영광스럽게 승리합니다. 

바울이 확신 있게 전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를 내 삶에서 얼마나 누리나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다윗처럼 심각한 범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아파하고 슬퍼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염려하게 하고 구원의 확신을 흔듭니까?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이 믿음 가지고 담대히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답게 살아가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의심하고 등을 돌리게 하려는 모든 거짓말과 위협에 담대히 맞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과 우리의 판단에 근거해서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신 사랑 안에서 평안과 소망의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Pray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룸이 하나님의 ‘선’입니다(롬 8:26-30)
Aug 10, 2020

무엇을 기도할지 모르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은 누구인가요?

우리는 때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또한 믿음이 부족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과 구원의 깊이와 너비가 어떠한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를 드리기에 우리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에도 소망이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성령이 친히 ‘하나님의 뜻대로’간구하시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을 따르는 기도가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도입니다. 성도는 내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의지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를 젓는 배를 떠 올려야 합니다. 노를 젓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어부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일찍부터 노 젓 법을 가르칩니다. 먼저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혼자 노를 저어 보라고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열심히 저어 보지만 자기보다 큰 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쩔쩔맵니다. 노 하나만 다루는 것도 힘든데 센 물살을 갈라야 하니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명심하고 그대로 따라 해 보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웃으면서 일어나 아들에게 가까이 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등 뒤에 자기 몸을 대고 두 팔을 쭉 내밀어 아들이 작은 손 위에 자기의 큰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노 젓기를 시작합니다. 아들은 힘들이지 않고 신나게 물산을 가릅니다. 아버지가 노를 젓는 대로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들이 노 젓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말씀이,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드린다는 말씀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성령은 ‘너는 저기 앉아서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게’라는 식으로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열심히 노를 저을 때, 즉 기도할 때 오셔서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협력해 이루시는 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우리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28절은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지만 동시에 가장 오해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선’(헬, 아가토스)은 이 땅의 삶에서 좋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이 합력해 이루시는 선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창세전에 미리 정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시고, 마침내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살면서 만나는 고난이나 기쁨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과정이라고 여길 때 어떤 일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이나 기쁨을 통해 나의 내면을 어떻게 만져 주시나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연약함과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더 앞으로 가보면 우리가 겪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외적인 박해와 내적으로 겪는 고통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령을 따르는 생활을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애쓰고 주님을 따르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 성도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치열한 내적 싸움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길입니다. 이런 진실한 애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겪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을 닮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죄가 더 살아나고 죄가 더 커 보이는 이 안타까운 상황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런 내적 고난의 시기는 통해 반드시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오늘의 기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성령님께서 친히 간구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 받은 그 부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소서. 

Pray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하나님 자녀(롬 8:12-17)
Aug 08, 2020

바울이 하나님 은혜로 변화된 성도를 빚을 지고 사는 사람으로 묘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도는 복음의 은혜에 빚진 자입니다. 바울은 성도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설명하면서 ‘빚진 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 이상 육신에 매여 살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은 큰 복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성도는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신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죽을 몸을 지니고 살아가기에 죄는 항상 가능성으로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 것인지, 성령을 의지해 생명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날마다 육체의 욕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성령이 주관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따르면 죽여야 하는 몸의 행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진 성령의 사람은 육신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죽여야 한다는 말은 현재 동사입니다. 한번 죽이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매일 매일 죽이고 또 죽여야 합니다. 죽인다는 말은 꼼짝 못 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혹은 끊어 버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빚진 자의 심정으로 매일 매일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몸의 행실들을 죽여야 합니다. 이 몸의 행실이라는 말은 생각으로 죄짓는 일, 행동으로 죄짓는 것, 습관으로, 유혹 때문에 짓는 모든 종류의 죄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성령의 사람이라는 인식입니다. 빚진 자라는 분명한 의식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나를 다스리신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은 전제군주가 아닙니다. 폭군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하나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울은 이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묘사합니다. 선민이라 자처한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자가 있으면 신성 모독으로 간주해 돌을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친밀함을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아빠, 아버지’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사용하신 단어입니다(막 14:36; 눅 11:1-2). 성령은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확증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영광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셨듯 고난은 영광에 이르는 필수 과정입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다운 말과 행실은 어떠할까요?

성령의 사람은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하실 때 영원한 천국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옳게 깨닫고 고난 중에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성령의 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옳게 깨달아 아들다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몸의 행실을 죽이고 주님을 좇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성령의 사람이요 성도입니다. 날마다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 그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성도요 성령의 사람입니다. 치열한 영적인 싸움으로 힘들고 지칠 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성령의 사람입니다.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때 영광스러운 천국을 상속 받기 위하여 이 땅에서 고난을 이겨나가는 사람이 바로 성령의 사람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기쁘게 아빠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날마다 나아가게 하소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상속자의 영광을 소망하며 잠깐의 고난을 참고 견디게 하소서.

Pray

성령의 법 아래 거하며 생명과 평안을 누리라(롬 8:1-11)
Aug 07, 2020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BC와 AD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십니다. 이전에 율법 아래 살 때는 율법을 지킬 힘이 없었기에 정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율법은 곧 정죄와 사망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삶이 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가 담당해야 하는 모든 죗값을 대신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을 믿을 때 성령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좇는 육신의 삶을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생명과 평안을 누립니다. 성도는 매사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생각과 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생명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 내 마음과 생각에서 정리할 것은 무엇인가요?

구원받은 자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육신은 인간의 한계성을 뜻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생명도 능력도 그리고 상상력도 모두 제한되어 버렸습니다. 죄로 인한 죽음의 권세 아래 육신이 갇혀 제한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죽음 너머를 생각하지 못하고, 두려움 너머를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육신의 한계성이라는 감옥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영을 생각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셨던 일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삶의 목적이 바뀐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몸과 영의 상태는 어떠할까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삶을 묘사하며, 몸은 죄로 인해 죽었지만 영은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타락의 결과로 육체는 죽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영은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 인정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이 살아난 것을 체험한 성도는 여전히 죄의 몸을 지니고 이 땅에 살지만 소망을 가집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이후에 자신도 부활해 신령한 몸을 지닐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영원의 관점에서 현재를 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 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사랑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내 영을 살리신 주님이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확신으로 간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몸이 단순히 썩어 없어질 육체만을 뜻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며, 동시에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될 몸, 부활체가 될 것입니다.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전혀 다른 몸을 입고 계셨기만, 그분의 몸에 십자가 고난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단순히 건강하고 멋지고 그리고 아름다움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해 가면서 부활 이후 십자가 고난의 흔적만은 계속적으로 남게 될 몸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이며 사명임을 잊지 말고 우리 영을 살리신 주님이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확신으로 부활의 영광을 사모하며 간구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책감으로 인해, 소외감으로 인해, 그리고 한계성으로 인해 두려워 떨며 죽음의 공포에 종이 되어 살던 우리였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의 감옥으로부터, 죽음의 노예로부터 자유케 되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도저히 스스로 용서 할 수 없는 죄책감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우리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벗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참된 자유자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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