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헌금 (Online Offering)
다윗의 참전을 반대한 블레셋 지휘관들(삼상 29:1-5)
1 블레셋 사람은 모든 부대를 아벡에 집결시켰고, 이스라엘 사람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가에 진을 쳤다.
2 블레셋 사람의 지도자들은 수백 명, 수천 명씩 거느리고 나아갔으며, 다윗도 부하를 거느리고, 그 행렬의 맨 뒤에서 아기스와 함께 나아갔더니,
3 블레셋 사람의 지휘관들이 항의하였다.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습니까?"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의 지휘관들에게 말하였다. "귀관들도 알다시피, 이 사람은 이스라엘 왕 사울의 종이었던 다윗이오. 그가 나와 함께 지낸 지가 이미 한두 해가 지났지만,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허물도 찾지 못하였소."
4 그러나 블레셋 족속의 지휘관들은 다윗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블레셋 족속의 지휘관들이 아기스에게 강요하였다. "저 사람을 돌려 보내십시오. 임금님께서 그에게 지정하여 준 그 곳으로 그를 돌려보내시고, 우리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싸움터에 나가서 그가 우리의 대적으로 돌변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가 무엇을 가지고 자기의 주인과 화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군인들의 머리를 잘라다 바쳐서 하지 않겠습니까?
5 그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춤을 추면서,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 하고 추켜세우던 그 다윗이 아닙니까?"
위기를 모면한 다윗(삼상 29:6-11)
6 마침내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말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지만, 장군은 정직하였소. 나에게로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나는 장군에게서 아무런 허물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장군이 나와 함께 이 부대에 들어와서 출전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소. 그런데 저 지휘관들은 장군을 못마땅해 하오.
7 그러니 이제 장군은, 블레셋 사람의 지도자들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고, 평안히 돌아가기를 바라오."
8 이번에는 다윗이 아기스에게 항의하였다. "내가 잘못한 일이 무엇입니까? 임금님을 섬기기 시작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임금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종에게서 아무런 허물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왜 이 종이 이제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싸우러 나갈 수가 없습니까?"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장군이 정직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아오. 나는 장군을 하나님의 천사처럼 여기오. 그런데 블레셋 사람의 지휘관들이 장군과 함께는 싸움터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오.
10 그러니, 이제 장군은, 장군이 데리고 있는 옛 주인의 종들과 더불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시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해가 뜨는 대로 떠나도록 하시오."
11 그리하여 다윗은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하들과 함께 출발하여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오고, 블레셋 족속은 이스르엘로 올라갔다.
<말씀묵상>
블레셋 지휘관들이 다윗의 참전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택하신 자녀를 위해 피할 길을 내십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출정하기 위해 아벡으로 향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될 사람이 동족과 싸워야 하는 위기에 놓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블레셋 지휘관들의 반대에 부딪혀 상황이 뜻밖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블레셋 지휘관들은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이방인이나 사회적 하층 계급 사람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다윗의 참전을 반대하는 블레셋 지휘관들은 과거에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사실까지 들먹입니다. 적으로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전쟁터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다른 사람의 반대조차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에 부딪히는 일이 있을 때, 신앙인으로서 나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기쁜 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말미암아 영원히 소망이 없는 인간에게 구원과 영생, 부활의 영원한 소망을 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외 없이 모든인류에게 기쁜 소식이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왜 복음의 핵심인가? 인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죄를 씻을 수 없기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죽으시지 않았다면 인간은 스스로 죄를 씻거나 사함을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서 희생 되셨기 때문에, 그의 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가 복음입니다. 바울은 주의 일을 하다가 반대에 부딪히고, 핍박을 받게 되는 상황이 오히려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된다고 했습니다(빌1:28).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윗은 동족과 싸워야 할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났나요?
아기스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다윗을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맏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면서 다윗에게 해명합니다. 아기스 자신은 다윗을 신뢰하는데 방백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다고 여기며 안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기스에게는, 자신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자신의 주인인 아기스를 위해 못 싸우게 하느냐며 서운함과 충성심을 보이는 척합니다. 그러자 아기스는 다윗을 달래느라 절절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도 우리를 진퇴양난의 덫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내 삶과 공동체가 처한 상황에서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인도 질병에 걸릴 수 있고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고 어려움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려움을 만나 우리의 믿음을 무너트리고 우리 영적 생명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악한 사단의 손에서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과 시험과 환난들은 다 주님의 손아래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신 어려움과 시험이 없습니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우리가 어려움과 환난을 당할 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성숙시키기 위해, 우리의 인격을 빚으시기 위해 때로 고난과 환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 환난이, 악이 나를 헤치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감당할 힘과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악에서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인간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길에서 맞닥뜨린 위기에도 피할 길을 여시는 하나님 은혜를 찬양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하시며 우리를 살려 주시는 분은 주님뿐임을 고백합니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전쟁의 패배와 사울의 죽음 예언(삼상 28:15-19)
15 사무엘이 사울에게 물었다. "당신이 왜 나를 불러올려 귀찮게 하시오?" 사울이 대답하였다. "제가 매우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지금 저를 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미 저에게서 떠나셨고, 예언자로도, 꿈으로도, 더 이상 저에게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이처럼 어른을 뵙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16 사무엘이 책망하였다. "주님께서는 이미 당신에게서 떠나 당신의 원수가 되셨는데, 나에게 더 묻는 이유가 무엇이오?
17 주님께서는, 나를 시켜 전하신 말씀 그대로 당신에게 하셔서, 이미 이 나라의 왕위를 당신의 손에서 빼앗아 당신의 가까이에 있는 다윗에게 주셨소.
18 당신은 주님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소.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늘 당신에게 이렇게 하셨소.
19 주님께서는 이제 당신과 함께 이스라엘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인데, 당신은 내일 당신 자식들과 함께 내가 있는 이 곳으로 오게 될 것이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실 것이오."
두려움에 엎드러진 사울(삼상 28:20-25)
20 그러자 사울은 갑자기 그 자리에 쓰러져 땅바닥에 벌렁 넘어졌다. 사무엘의 말을 듣고서,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그 날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굶었으므로, 힘마저 쭉 빠져 있었다.
21 그 여인이 사울에게 가까이 와서, 그가 아주 기진맥진해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종은 임금님의 분부를 다 따랐습니다. 저는 목숨을 내놓고, 임금님이 저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22 그러므로 이제는 임금님도 이 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임금님께 음식을 좀 대접하여 드리겠습니다. 임금님이 길을 더 가시려면 기운을 차리셔야 하니, 음식을 드시기 바랍니다."
23 그러나 사울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하고 말하면서, 그 여인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신하들까지 그 여인과 함께 사울에게 권하니, 사울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바닥에서 일어나 평상에 앉았다.
24 그 여인에게는 집에서 키운 살진 송아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서둘러서 그것을 잡고, 밀가루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구워서,
25 사울과 그의 신하들 앞에 차려 놓으니, 그들은 그 음식을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떠났다.
<말씀묵상>
사울은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나요?
사무엘이 전한 내용은 하나님이 사울에게 하셨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이 그를 떠나 그의 대적이 되신 이유를 말해 줍니다. 사울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아멜렉을 진멸하지 않은 일이 대표적 이유로 지목되는데(18절), 무고한 다윗을 죽이려 한 일과 제사장을 죽인 일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이 나라의 왕위를 빼앗아 다윗에게로 이미 넘기셨음을 전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울과 이스라엘을 블레셋 손에 넘기실 것이며,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바로 다음날 죽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사울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판결은 번복되지 않습니다.
어떨 때 나는 죄의 결과가 무섭다는 것을 깨닫나요?
때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이겨내지 못해 그간 이루어 온 큰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죄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죄도 크게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죄라도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면 큰일입니다. 무감각증 환자들이 보통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세균 감염으로 인해 조직이 크게 손상됐기 때문입니다. 세균이 중추신경계를 마비시켜 마취주사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이런 병은 환자로 하여금 모든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그런데 무감각증과 죄의 증세 사이에는 놀랄 만한 유사점이 있습니다. 일단 죄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면 서서히 우리 영혼을 손상시켜 ‘상처와 감염’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양심은 점점 무디어져서 결국 영혼이 마비증세에 빠지는 것입니다.
심판 예언을 들은 사울의 반응과 처지는 어떠했나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둔 사울은 근심으로 온종일 밥을 먹지 못한 까닭에 기운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사형 선고까지 받자, 충격과 두려움으로 땅에 엎어집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왕이 되었던, 순수하고 늠름했던 사울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이제 그는 자기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버림받고 벌벌 떠는 힘없는 늙은이일 뿐입니다. 신접한 여인은 이러한 사울을 불쌍하게 여기고 마지막 음식을 준비해 줍니다. 사울은 신접한 여인의 대접을 받고 군사들과 길을 떠납니다. 한때 하나님께 쓰임받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무당에게 위로받는 참담한 처지로 전락한 것입니다.
사울처럼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내가 지금 돌이킬 일은 무엇인가요?
죄란 목표를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한 일,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하는 목표를 버리고 다른 목표를 갖는 것이 죄입니다. 죄란 부르심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주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욕심의 부름에 귀를 여는 것입니다. 죄란 참다운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옴에도 불구하고 물질이나 명예를 통하여 힘과 소망을 얻어보려는 시도입니다. 결국 죄는 사람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을 것입니다. 작은 구멍이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죄라고 해서 내버려두면 한 인간의 생애를 침몰시킬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방향에서 돌이키는 것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감추거나 변명하지 않고 고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 용서받고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짓는 크고 작은 죄와 허물을 감추지 말고, 합리화하지 말고,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 죄를 버리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힘으로는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음을 알기에 은혜와 긍휼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지 제 삶을 자세히 돌아보며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소서. 아직 기회가 있는 지금 마음을 열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가드 왕 아기스를 찾아가는 다윗(삼상 27:1-7)
1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제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사울이 다시 나를 찾으려고 이스라엘의 온 땅을 뒤지다가 포기할 것이며,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2 그래서 다윗은 일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부하 육백 명을 거느리고,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넘어갔다.
3 그리하여 다윗은 가드에 있는 아기스에게로 가서 거처를 정하였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다윗이 거느린 두 아내는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인 아비가일이었다.
4 다윗이 가드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하여지니, 그가 다시는 다윗을 찾지 않았다.
5 다윗이 아기스에게 간청하였다. "임금님이 나를 좋게 보신다면, 지방 성읍들 가운데서 하나를 나에게 주셔서, 내가 그 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종이 어떻게 감히 임금님과 함께, 임금님이 계시는 도성에 살 수가 있겠습니까?"
6 그러자 아기스는 그 날 당장 시글락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래서 시글락이 이 날까지 유다 왕들의 소유가 되었다.
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서 거주한 기간은 일 년 넉 달이었다.
아기스를 속이고 유다를 구하는 다윗(삼상 27:8-12)
8 바로 그 기간에,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습격하곤 하였다. 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수르 광야와 이집트 국경선에 이르는 전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9 다윗은, 그들이 사는 지역을 칠 때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옷을 약탈하였다. 약탈물을 가지고 아기스에게로 돌아가면,
10 아기스는 으레 "그대들이 오늘은 어디를 습격하였소?" 하고 묻고, 그럴 때마다 다윗은, 유다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여라무엘 족속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또는 겐 족속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하는 식으로 대답을 하곤 하였다.
11 다윗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이고 가드로 데려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다윗의 정체를 알아, 다윗이 그런 일을 하였다고 폭로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 거주하는 동안, 언제나 이런 식으로 처신하였다.
12 아기스는 다윗의 말만 믿고서,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서 그토록 미움받을 짓을 하였으니, 그가 영영 자기의 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말씀묵상>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다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힘들고 지친 상황에 계속 머물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요한 추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블레셋의 가드로 갑니다. 가드는 그가 이전에 도망 나왔던 곳입니다(21:10-15). '아기서'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블레셋의 지도자 호칭으로 봅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받아 준 이유는 첫째, 오랫동안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적한 사실을 알기에 다윗이 사울과 이스라엘에 대한 원한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윗이 데리고 다니는 600명의 용사가 유용한 병력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글락이란 성읍을 얻게 되며서 블레셋 땅에서 잠시 평안을 누립니다.
당면한 고난을 회피하려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생각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요?
살아가다 보면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고민이 시작될 때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면 그때 누군가를 찾아가 상의하게 됩니다. 그때 누군가 상의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그 상담자가 때로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교사, 선배,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 물어야 입니까?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때 상담 수단은 물론 기도입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고 상담하는 기도입니다. 사실은 일이 있을 때만 아니고 매사를 상담해야 합니다. 맡기지 않은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인생이라면 늘 기도로 물어야 합니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유다 지역을 약탈했다고 왜 거짓말을 했을까요?
시글락에 자리 잡은 다윗은 시글락에 있는 군사들과 가족을 부양하고 아기스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해 주변 부족을 약탈하러 다닙니다. 약탈 전쟁은 양식과 물자가 부족하던 고대 근동 사회의 삶의 방식입니다. 다윗이 약탈한 재물의 일부를 아기스에게 바친 것은 아기스를 향한 충성심을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아기스가 "어디서 약탈했느냐?"라고 묻자, 다윗은 "유다 지파를 약탈했습니다."라고 거짓말합니다. 비록 도망자이지만 다윗은 동족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아기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이 이스라엘과 원수인 것처럼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에 지금 이방 땅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 삶이 외줄 타기와 같이 불안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불안을 극복해야 합니다. 불안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심리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사 34:13)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불안은 죄로부터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죄일지라도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죄의 문제로 불안해하며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또한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모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길 때 불안을 극복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수조차 없을 때도 우리를 일으켜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인간적인 판단으로 우리의 살길을 찾아 나서려는 마음을 접게 하시고, 거짓으로 목숨을구걸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지 않도록 인도해 주소서.
사울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다윗(삼상 26:13-20)
13 다윗이 맞은편으로 건너가 멀리 산꼭대기에 섰다. 다윗과 사울 사이의 거리가 꽤 멀어졌다.
14 여기서 다윗이 사울의 부하들과 넬의 아들 아브넬에게 소리쳤다. "아브넬은 대답을 하여라!" 아브넬이 대답하였다.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소리를 쳐서 임금님을 깨우느냐?"
15 다윗이 아브넬에게 호통을 쳤다. "너는 사내 대장부가 아니냐? 이스라엘 천지에서 너만한 대장부가 어디에 또 있느냐? 그런데 네가 어째서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잘 보호하여 드리지 않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범하려고 이미 들어갔었다.
16 너는 이번에 너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너희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너희의 상전을 보호해 드리지 못했으니, 너희는 이제 죽어 마땅하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왕의 창이 어디로 갔으며, 왕의 머리맡에 있던 물병이 어디로 갔는지, 어서 찾아 보도록 하여라."
17 사울이 다윗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말하였다. "나의 아들 다윗아, 이것이 정말로 너의 목소리냐?" 다윗이 대답하였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 그러합니다."
18 그런 다음에, 다윗이 말하였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임금님의 종을 사냥하러 나오셨습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내 손으로 저지른 죄악이 무엇입니까?
19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은 이 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임금님을 충동하여 나를 치도록 시키신 분이 주님이시면, 나는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을 충동하여 나를 치도록 시킨 것이 사람이면, 그들이 주님에게서 저주를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유산으로 주신 땅에서 내가 받을 몫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나더러 멀리 떠나가서 다른 신들이나 섬기라고 하면서, 나를 쫓아낸 자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20 그러니 이제,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이방 땅에서, 내가 살해당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사냥꾼이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듯이, 겨우 벼룩 한 마리 같은 나를 찾으러 이렇게 나서셨습니까?"
21 사울이 대답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나의 아들 다윗아, 돌아오너라. 네가 오늘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 주었으니, 내가 다시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 정말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울(삼상 26:21-25)
22 다윗이 말하였다. "여기에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젊은이 하나가 건너와서 가져가게 하십시오.
23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공의와 진실을 따라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늘 임금님을 나의 손에 넘겨 주셨지만, 나는,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24 그러므로 내가 오늘 임금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겼던 것과 같이, 주님께서도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어떠한 궁지에서도 나를 건져 내어 주실 것입니다."
25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다윗아,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시기를 바란다. 너는 참으로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이니, 매사에 형통하기를 바란다." 다윗은 자기의 길로 가고, 사울도 자기의 궁으로 돌아갔다.
<말씀묵상>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행동이 왜 죄가 된다고 했나요?
다윗은 거듭 원수의 생명을 살려 줍니다. 사울의 물명과 창을 가진 다윗은 안전한 거리로 도망한 후,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부릅니다. 다윗이 아브넬을 질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울에게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것이 사람의 뜻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인지를 사울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통해 구원 역사를 펼쳐 가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내는 일은 그를 하나님 앞에서 쫓아내 다른 신을 섬기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과거에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던 다윗은(24:11), 이번에는 자신을 죽이는 것은 '죄'라며 이전보다 강하게 사울을 비판합니다.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이 하나님 앞에 죄임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의 주님과 동행하며, 그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형제를 미워해도 될까요? 사랑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타인을 심히 미워하고 타인관의 관계에 갈등의 불이 꺼지지 않고 내 안에 타인을 향한 사랑이 턱없이 부족함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확실한 증거가 이웃 사랑이기 때문에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은 분명히 하나님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신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진 자에게 얼마나 비정상 인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백하여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한 자신의 선한 행동에 하나님이 어떻게 갚아 주시길 원했나요?
사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이번에는 "너는 의롭다(옳다)."가 아니라 "내가 죄를 범했다."라며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을 시인합니다(21절; 24:17). 다윗은 사울에게 창과 물병을 돌려주며 자신이 왕을 죽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다윗은 각 사람에게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선한 행동을 기억하시고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사울의 생명을 귀하게 여겼듯 하나님도 자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사울과 다윗, 나발과 다윗의 관계에서 다윗의 신앙은 더 성숙해 갑니다(24-26장). 그리고 하나님이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으심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을 믿고 선을 따라야 할 일이 있나요?
우리가 창세기에서 배울 수 있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이는 사람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게 하고자 하신 창조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스스로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만 생명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를 분명히 하시기 위해 처음부터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보응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알기에 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이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원수를 사랑함으로 그의 연약함까지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함을 허락하소서. 지금 당하는 억울함이 장차 하나님께 받을 복의 이면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를 인정함으로 타인의 생명을 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하소서.
십 광야로 온 사울(삼상 26:1-7)
1 십 광야의 주민이 기브아로 사울을 찾아와서 밀고하였다. "다윗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에 숨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2 그래서 사울이 일어나, 이스라엘에서 삼천 명을 골라 거느리고, 십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으러 직접 십 광야로 내려갔다.
3 사울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으로 들어가 길 가에 진을 쳤다. 이 때에 다윗은 바로 그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자기를 잡으려고 그 광야로 쫓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4 다윗은 곧 정찰대원들을 파견하여, 사울이 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확인하게 한 다음에,
5 사울이 진을 친 곳으로 가 보았다. 다윗이 그 곳에 와 보니, 사울과 넬의 아들 아브넬 군사령관이 자고 있었는데, 사울은 진의 한가운데서 자고, 그의 둘레에는 군인들이 사방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6 그래서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인 아비새에게, 누가 자기와 함께 사울의 진으로 내려가겠느냐고 물으니, 아비새가 나서서, 자기가 다윗과 함께 내려가겠다고 대답하였다.
7 이리하여 다윗이 아비새를 데리고 밤에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사울이 진의 한가운데서 누워 자고, 그의 머리맡에는 그의 창이 땅바닥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군인들은 그의 둘레에 사방으로 누워 있었다.
사울을 살려 준 다윗(삼상 26:8-12)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자청하였다. "하나님이 오늘, 이 원수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제가 그를 당장 창으로 찔러 땅바닥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한 번이면 됩니다."
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에게 타일렀다.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든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자를 죽였다가는 벌을 면하지 못한다."
10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주님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갔다가 죽든지 할 것이다.
11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내가 쳐서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을 들고 아비새와 함께 빠져 나왔으나, 보는 사람도 없고, 눈치채는 사람도 없고, 깨는 사람도 없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들이 모두 곤하게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묵상>
다시 시작된 사울의 추적에 다윗은 어떻게 대응했나요?
어리석은 자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다윗을 '내 아들'(24:16)이라 부르며 용서를 구하던 사울의 모습은 일시적이었을 뿐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다시 십 광야로 갑니다. 다윗은 정탐꾼을 통해 사울의 동태를 파악하는 등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합니다. 사울의 진을 관찰하던 다윗은 아비새만 데리고 사울의 진영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요나단이 병사 한 명만 데리고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한밤중이라 할지라도 3,000명의 군사와 보초들로 둘러싸인 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행동합니다.
내가 담대히 믿음으로 직면해 해결할 일은 무엇인가요?
믿음에는 사건을 해석하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해석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져야 하는 관점은 하나님의 시각과 우리의 시각입니다. 사건과 문제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에만 집중하여 보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항상 뒷전에 밀려나기 때문에 문제 가운데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겪게 됩니다. 문제를 중심으로 삶을 보면 믿음으로부터 떠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른바 문제는 문제이고 믿음은 믿음으로 분리되고 맙니다. 동일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느냐에 다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고 환경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창과 물병만 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울은 많은 군대와 부하에 둘러싸여 진영 한가운데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안전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비새는 하나님이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셨다며, 자신이 단번에 죽이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이번에도 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는 것은 죄며, 하나님이 친히 사울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나발의 죽음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는데, 창은 사울의 생명이 다윗의 손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무사히 사울의 진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울과 모든 군대를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에게 복수하고 싶을 때 내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역할을 내가 맡아 마땅히 벌 받아야 할 자를 처벌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순수한 동기로 복수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모세의 율법에서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레 19:18)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다윗은 일방적으로 사울에게 괴롭힘을 당한 결백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에 대한 복수하기를 거절했습니다. 다윗은 복수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명령에 복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복수를 맡기고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인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 5:44)를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잘못을 인정했던 원수가 동일한 모습으로 다시 공격해 올 때, 인간에 대한 실망이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게 하소서. 반복되는 공격에 감정이 상해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
행복한교회 가족들간의 친교를 위해서, 주변의 한인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서 행복한교회에서 바자회를 진행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처하는 행복한교회 단계별 대응방안에 대해서 운영위원회를 통해서 논의했습니다. 행복한교회 성도님들께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면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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