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헌금 (Online Offering)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느 9:19-25)
19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불쌍히 보셔서, 차마 그들을 광야에다가 내다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낮에는 줄곧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는 길을 밝히 비추어 주셨습니다.
20 선한 영을 주셔서, 그들을 슬기롭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입에 만나가 끊이지 않게 하시며, 목말라 할 때에 물을 주셨습니다.
21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이나 돌보셔서, 그들이 아쉬운 것 없게 하셨습니다. 옷이 해어지지도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도 않았습니다.
22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우리 조상에게 굴복시키셔서, 우리 조상이 시혼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고, 그것을 나누어서 변방으로 삼았습니다.
23 주님께서는 우리 조상의 자손을 하늘의 별만큼이나 불어나게 하시고,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 곳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24 자손이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때에, 그 땅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그 자손에게 굴복시키고, 왕들과 그 땅의 백성마저 자손이 좋을 대로 하게 하셨습니다.
25 자손은 요새화된 성채들과 기름진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과 이미 파 놓은 우물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과 과일이 흐드러지게 열리는 나무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먹고 만족하게 생각했으며, 살이 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큰 복을 한껏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느 9:26-31)
26 그런데도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 반역하였으며, 주님께서 주신 율법을 등졌습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라고 타이르던 예언자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엄청나게 주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27 주님께서는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내맡기시어 억압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억눌림을 받고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시어, 원수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건져낼 구원자들을 보내 주시곤 하셨습니다.
28 그러나 편안하게 살만하면, 주님께서 보고 계시는데도, 또다시 못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럴 때에는, 주님께서 그들을 원수의 손에 버려 두셔서, 억눌림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돌이켜 주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구하여 주시곤 하셨습니다.
29 돌이켜 주님의 율법대로 바로 살라고, 주님께서 엄하게 타이르셨지만, 그들은 거만하여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지키기만 하면 살게 되는 법을 주셨지만, 오히려 그 법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께 등을 돌리고, 목이 뻣뻣하여 고집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30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참으셨습니다.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주님의 영으로 타이르셨지만, 사람들은 귀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주님께서는 그들을 여러 나라 백성에게 넘기셨습니다.
31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셔서, 멸망시키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말씀묵상>
광야 시절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나요?
광야 시절 이스라엘은 불순종을 일삼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며 기회를 주셨습니다. 가나안 정탐 사건 후 불순종하고 거역한 자들을 치셨지만, 광야 40년 동안 그들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하셨으며, 마침내 약속하신 가나안 땅까지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19~21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 지역을 정복했고(22절), 나아가 가나안 땅에서 복을 누렸습니다(23~25절). 이렇듯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한 사랑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나의 죄와 허물에도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파괴하고 사람과의 관계성을 파괴합니다. 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죄는 불신이요 교만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는 번민하여 고통합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고통을 맛본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압니다. 우리가 죄를 덮으려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는 죄를 더욱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덮어주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죄를 드러낼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미쁘셔서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반역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큰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배신하면 두려운 징계가 따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복된 땅에서 지속적으로 불순종했습니다. 거역하고, 율법을 버리고(등지고),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26절). 시간이 지날수록 반역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타락과 심판과 구원’ 사이클(27~28절)은 사사 시대부터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반복되었습니다. 타락이 점점 심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고집스럽고 교만해져 더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분께 반역하는 완고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두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끊을 수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고난 중에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상의 모든 역사는 불확실성의 역사입니다. 모든 인간의 삶도 불확실합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어떤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가장 안정감 있는 영혼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신 있는 삶으로 살아가는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이 결핍된 영혼일수록 불안하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올바르고 풍성한 사랑 속에 거하는 영혼은 불안이 없고 담대합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고난중에도 안정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깨닫고, 믿고, 체험하고, 확신하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삶을 돌이켜 볼수록 모든 순간이 오직 하나님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말씀을 따르는 삶이 제게 가장 큰 만족이고 행복이 되게 하소서. 강퍅하고 고집스러운 저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긍휼로 덮으시는 하나님 안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느 9:9-15)
9 주님께서는 우리 조상이 이집트에서 고난받는 것을 보시고, 홍해에서 부르짖을 때에 들어주셨습니다.
10 이집트 사람들이 우리 조상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셔서,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으며, 그 때에 떨치신 명성이 오늘까지 이릅니다.
11 조상 앞에서 바다를 가르시고, 그들이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지나가게 하셨지만, 뒤쫓는 자들은, 깊은 바다에 돌이 잠기듯이, 거센 물결에 잠기게 하셨습니다.
12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는 길을 밝히 비추어 주셨습니다.
13 몸소 시내 산에 내려오시며, 하늘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셔서, 바른 규례와 참된 율법, 좋은 율례와 계명을 주셨습니다.
14 주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알려 주시고, 주님의 종 모세를 시키셔서 계명과 규정과 율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5 굶주릴까봐 하늘에서 먹거리를 내려 주시고, 목마를까봐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을 들어 맹세하며 주시겠다고 한 그 땅에 들어가서, 그 곳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신앙에 대한 회고(느 9:16-18)
16 그러나 우리 조상은 거만하여, 목이 뻣뻣하고 고집이 세어서,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17 주님께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주님께서 보여 주신 그 놀라운 일들을 곧 잊었습니다. 뻣뻣한 목에 고집만 세어서, 종살이하던 이집트로 되돌아가려고, 반역자들은 우두머리를 세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 은혜로우시며, 너그러우시며, 좀처럼 노여워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많으셔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18 더욱이, 우리 조상은, 금붙이를 녹여서 송아지 상을 만들고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우리의 하나님이다' 하고 외치고, 주님을 크게 모독하였습니다.
<말씀묵상>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베푸신 은혜는 어떠했나요?
출애굽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레위인들은 출애굽 사건을 상기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 있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을 항상 지켜보셨으며, 고통으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행하신 열 가지 이적은 하나님 백성을 괴롭힌 이들에게 내리신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자손과이집트 군대를 완전히 분리시키셨습니다.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시내산 언약을 주셔서 언약 공동체로 삼으셨으며, 일용할 양식과 물을 공급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자가 보일 마땅한 반응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지금까지 내 삶의 굽이마다 내려 주신 하나님 은혜는 어떠한가요?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대화하고 소통하길 원하십니다. 인격적인 만남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와 사랑도 깊어져 갑니다. 그렇기에 그 만남을 고백하는 간증이 소중하고 복된 것입니다. 사랑은 소통과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내가 어떻게 보답할까요?” 하고 고백할 수 있다고 하면 복된 것입니다.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한다는 건 추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의 기억, 하나님과의 추억 만들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 시절에 불순종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별한 구원과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교만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열 명의 정탐꾼이 전하는 불신 보고를 듣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려 했습니다(민 13~14장).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모두 죽이려 하셨지만, 모세의 중재로 살려 주셨습니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모독했을 때도 하나님은 백성을 모두 죽이려 하셨지만, 모세의 중재로 살려 주셨습니다(출 32장). 두 사건에서 이스라엘은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신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용서받았습니다.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 덕분입니다.
과거 불순종하던 때 나를 향한 하나님 사랑은 어떠했나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또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교리를 알고, 건강한 교회를 다니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인도하면서도 여전히 영적으로는 차갑고 무미건조하는 것도 경험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또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압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진실은 종종 지적인 수준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혀서 그 사랑안에서 자라갈 수 있도록 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법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게 하소서. 제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등진 순간에도 크신 자비로 저를 용서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모습은 과거로 던져 버리고, 하나님 은혜를 덧입어 승리의 삶을 살게 하소서.
금식과 회개(느 9:1-3)
1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서 금식하면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썼다.
2 이스라엘 자손은 모든 이방 사람과 관계를 끊었다. 그들은 제자리에 선 채로 자신들의 허물과 조상의 죄를 자백하였다.
3 모두들 제자리에서 일어나서, 낮의 사분의 일은 주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고, 또 낮의 사분의 일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주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창조와 언약의 하나님 찬양(느 9:4-8)
4 단 위에는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가 올라서서, 주 하나님께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5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가 외쳤다."모두 일어나서, 주 너희의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주님의 영화로운 이름은 찬양을 받아 마땅합니다. 어떠한 찬양이나 송축으로도, 주님의 이름을 다 기릴 수가 없습니다.
6 주님만이 홀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과, 거기에 딸린 별들을 지으셨습니다. 땅과 그 위에 있는 온갖 것, 바다와 그 안에 있는 온갖 것들을 지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하늘의 별들이 주님께 경배합니다.
7 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택하시어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고쳐서 부르셨습니다.
8 아브라함의 마음이 주님 앞에서 진실함을 아시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의 땅을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그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의로우셔서, 말씀하신 것을 지키셨습니다.
<말씀묵상>
세 시간(낮의 4분의 1) 말씀을 듣고, 세 시간 회개하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말씀의 부흥은 회개를 동반합니다. 초막절을 지낸 후 백성은 함께 모여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그들은 말로만 죄를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이방인과 절교합니다. 이는 이방인과 무조건 상종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흔드는 이방인과의 관계 혹은 이방의 관습이나 우상을 끊어 낸다는 의미로 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들은 세 시간(낮의 4분의 1) 정도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이후 세 시간 정도 죄를 자복하며 회개합니다. 철저한 회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로 서게 합니다.
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나요?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 중의 하나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논리와 성경으로만 복음을 설명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을 깨달으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즉 잘못된 삶을 바꾸려는 단계까지 나아야 합니다. 그토록 설교를 많이 듣지만 삶에 변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그 다음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고백하므로 삶에 적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시간은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회개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백성을 대표해 레위인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회개 의식은 레위인이 주도합니다. 백성이 율법을 듣고 회개하는 동안 레위인은 단에 올라서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백성을 대표해 자복하고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고 백성에게 먼저 영화로우신 하나님 이름을 송축하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존재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들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이를 성취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임과 그 언약으로 인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신앙의 기초이자 희망의 근거입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간구할 소망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까요? 사랑의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실패를 경험하게 하실까요? 우리는 어리석어서 시련을 겪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교만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 잘나갈 때, 승승장구할 때는 내가 잘난 줄 착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러나 절망에 빠질 때, 병 들었을 때, 실패했을 때 비로소 나의 죄와 무능과 무지와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때때로 절망으로 몰아가시는 것은 우리의 죄와 무능과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우리가 더욱 굳건해지고 견고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진저한 회개는 마음과 행동을 돌이켜 예배 회복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은혜를 입었으니, 하나님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게 하소서. 죄와 타협하지 않도록 제 삶 구석구석까지 말씀으로 채우소서.
율법을 낭독하는 에스라(느 8:1-3)
1 모든 백성이 한꺼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 제사장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왔다. 거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모두 나와 있었다.
3 그는 수문 앞 광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율법을 듣고 회개하는 백성(느 8:4-12)
4 학자 에스라는 임시로 만든 높은 나무 단 위에 섰다. 그 오른쪽으로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서고, 왼쪽으로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다.
5 학자 에스라는 높은 단 위에 서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그가 책 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에스라가 책을 펴면, 백성들은 모두 일어섰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면, 백성들은 모두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께 경배하였다.
7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는, 백성들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에, 그들에게 율법을 설명하여 주었다.
8 하나님의 율법책이 낭독될 때에, 그들이 통역을 하고 뜻을 밝혀 설명하여 주었으므로, 백성은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와, 학자 에스라 제사장과,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이 날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고 모든 백성을 타일렀다.
10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돌아들 가십시오. 살진 짐승들을 잡아 푸짐하게 차려서, 먹고 마시도록 하십시오. 아무것도 차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먹을 몫을 보내 주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의 거룩한 날입니다. 주님 앞에서 기뻐하면 힘이 생기는 법이니, 슬퍼하지들 마십시오."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달래면서,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슬퍼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12 모든 백성은 배운 바를 밝히 깨달았으므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며, 없는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크게 기뻐하였다.
<말씀묵상>
백성이 학사 에스라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인가요?
성벽 완공은 영적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8~10장은 언약 갱신 의식을 다룹니다. 과거 시내산 언약 때처럼 율법을 낭독하고(8장) 율법대로 살기로 맹세한 후 언약식을 행합니다(9~10장). 52일만에 성벽을 완성하고는 모든 백성이 나팔절에 수문 광장에 모입니다. 그들은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라고 요청하는데, 이는 율법을 알고 그대로 살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영적 회복은 성전과 성벽 건설에 머물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
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2절)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리에 누구도 배제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해 귀 기울이는 공동체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기적으로 배우는 자리를 나는 언제,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요?
말씀 읽는 습관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미 꾸준히 하고 있는 것에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만약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라면 성경앱을 통해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미 익숙해진 습관에 새로운 습관을 결합시키면 새로운 습관이 더 빨리 정착됩니다. 말씀 읽는 습관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작한 후에는 성경을 읽는 시간의 양에 중점을 두지 말고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성경 읽기가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는 묵상은 꾸준한 성경 공부 습관을 세우는 큰 도움이 됩니다. 규칙적으로 성경 공부에 전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빛이 되시고 힘이 되시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율법을 듣고 그 뜻을 알게 된 백성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에스라가 율법 낭독회를 주관합니다. 에스라가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나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고 백성 사이사이에 서 있던 레위인이 그 뜻을 설명해 줍니다. 귀환자들은 주로 바벨론에서 태어난 2세로, 당시 통용어인 아람어는 알았지만 히브리어는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멘'으로 응답하며 율법을 듣던 백성이 울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구원하시고 돌보신 하나님 사랑을 배신한 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은 백성에게 울음을 그치고 잔치를 하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회복된 백성은 이전 것은 잊어버리고, 이제 함께하시며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힘입니다.
내가 말씀 속에서 하나님 마음을 깨닫고 깊이 참회한 일은 무엇인가요?
내가 회개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회개시킬 수가 없습니다. 회개를 깊이 한 사람의 말씀은 예리한 칼과 같이 다른 사람의 심령을 찔러 쪼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깨어진 심정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는 일찍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때에 나는 참 죄인이다, 나는 참 나쁘다, 나는 약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기억하여라! 당신은 그것보다 더 악하다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악한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나의 죄를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며 부르짖고 안타까이 광명의 빛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부르짖고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궁한 자비하심이 영원히 성도들을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앞에 진실하게 반응하며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다음 세대를 비롯해 제게 맡겨 주신 사람들에게 말씀을 잘 해석해 줄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저의 힘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즐거워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출신을 알 수 없는 사람들(느 7:61-66)
61 이 밖에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 등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왔지만, 가문이 밝혀지지 않아서, 그들이 이스라엘의 자손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62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인데, 모두 육백사십이 명이다.
63 제사장 가문 가운데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도 있는데, 이들 가운데서 바르실래는 길르앗 지방 사람인 바르실래 집안으로 장가를 들어서, 장인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64 족보를 뒤져보았지만, 그들은 그 조상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제사장 직분을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 직분을 맡지 못하게 하였다.
65 유다 총독은 그들에게,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판결을 내릴 제사장이 나타날 때까지는, 가장 거룩한 음식은 먹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66 돌아온 회중의 수는 모두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다.
귀환자들이 가져온 재물(느 7:67-73)
67 그들이 부리던 남녀 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그 밖에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사십오 명이다.
68 또 말이 칠백삼십육 마리요, 노새가 이백사십오 마리요,
69 낙타가 사백삼십오 마리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 마리이다.
70 가문의 우두머리 가운데는 건축 기금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총독도 금 천 다릭과 쟁반 오십 개와 제사장 예복 오백삼십 벌을 창고에 들여놓았다.
71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공사를 위하여 창고에 바친 것은, 금이 이만 다릭이요, 은이 이천이백 마네였다.
72 나머지 백성이 바친 것은, 금이 이만 다릭이요, 은이 이천 마네요, 제사장의 예복이 육십칠 벌이다.
73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백성 가운데 일부와 성전 막일꾼들과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에 자리를 잡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렇게 여러 마을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에,
<말씀묵상>
귀환자 중에서 제사장 계보를 엄격하게 파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귀환자 중에는 출신을 알 수 없는 이도 있습니다. 61~62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일반 백성 중 출신 지역이나 가문을 알 수 없는 이들로, 바벨론 포로지에서 온 것은 분명하지만 이스라엘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명단에 들어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제사장의 경우는 반드시 레위 지파의 제사장 가문 사람이어야 하기에 계보를 엄격히 확인했습니다. 제사장 계보에 이름이 없는 사람이나(64절) 혈통과 무관하게 결혼해서 계보에 들어간 사람은(63절) 제사장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대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내가 기준을 낮추면 안 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난 주일 당신은 예배에 참석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만, "그 예배 모임 가운데서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기 쉽지 않습니다. 모든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단 이상 예배하지 않는 교회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며, 그의 백성들은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늘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되셨으며, 하나님 안에서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 되어 살아가는 그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귀환자들이 많은 재물을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귀환자들은 재물도 가져오고 노비도 데려옵니다. '노래하는 남'(67절)는 찬양대가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며 오락거리를 제공하던 이들로 봅니다. 말, 노새, 낙타, 나귀 등은 재물을 운반하는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가축 수가 많은 것은 귀환자들이 상당히 많은 재물을 가지고 왔음을 보여 줍니다(68~69절). ‘보물 곳간'과 '역사 곳간'은 성전을 짓기 위해 재물을 모아 놓는 창고를 가리킵니다(70~71절). 하나님은 포로 생활 속에서도 그분 백성의 삶을 지키시고, 일부는 부유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짓거나 성전을 유지하는 데 자신의 재물을 기꺼이 헌납했습니다. 신앙 공동체 회복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기꺼이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로 주신 재물을 어떤 일에 사용해야 보람될까요?
재물 자체가 죄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주신 그 재물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 “내가 다 벌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탐욕이 생겨서 적절하게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감사도 하지 않고,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보답하지 못하는 거싱 죄악입니다. 누가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만 의지하다가 참 안식이 되시는 하나님을 애석하게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늘 깨달아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재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영광돌리는 일에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계보를 알 수 없는 사람 같았던 저를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도록 저를 부르셨으니, 주신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감사하며 순종으로 화답하게 하소서.
행복한교회 가족들간의 친교를 위해서, 주변의 한인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서 행복한교회에서 바자회를 진행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처하는 행복한교회 단계별 대응방안에 대해서 운영위원회를 통해서 논의했습니다. 행복한교회 성도님들께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면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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