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상을 추구하는 제자의 삶(눅 6:12-26)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어떻게 선택하셨나요?
성도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 세우시는 일을 앞두고 산으로 가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날이 밝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라 칭하십니다. 이들의 출신고 성향은 다양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해 몇 명은 어부였고, 마태는 세리, 시몬은 열심당원입니다. 또한 가룟 유다는 후일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30개에 팔아넘길 자로, 제자 중 유일하게 유대 지역 출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강하게 훈련하셔서 그분의 사역을 계승하게 하십니다. 출신도 성향도 다양하지만, 성도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아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출신도 성향도 다양한 이들을 불러 그분의 제자로 삼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부르심을 보면 단순히 구원받고 천국 가는 신자로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구원하실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만큼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따름 역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경제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 공동체의 성격이 어떠 한지를 잘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어떤 계층을 위해서 모인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부르셔서 자신 따르게 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 공동체는 정치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 차별하거나 소외되지않고 화목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때문에 서로를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진정한 복과 화가 무엇인지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이 평지에서 하신 설교를 '평지설교'라고도 하는데, 이 설교는 마태복음 5-7장 '산상 설교'(산상 수훈)와 병행을 이룹니다. 예수님은 네 가지 복(20-23절)을 말씀하신 후, 네 가지 화(24-26절)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슬피 우는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들은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하고 뛰놀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부요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웃는 사람들,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이들은 세상의 위로를 다 받았기에 오히려 애통해하며 울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복의 기준이 달라야 합니다. 오직 주님이 규정하신 복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 가운데 상심한 내게 위로가 되는 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프고 미움받는 것이 복된 것이라는 말에 "맞아. 그래."라고 바로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지금 가난하고 지금 굶주리고 지금 슬프고 지금 예수님 때문에 미움받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 복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복이 되시는 것을 알고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조품 복을 붙잡고 추구하고 있는 사람은 진짜 복이 되시는 예수님을 찾고 구하고 만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참된 복이 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데 장애물이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현재의 가난함이 굶주림이 슬픔이 미움받음이 참 생명이 되시며 복이 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방편이 된다면 얼마나 기쁘고 좋은 것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을 믿을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며 주님을 따를수 있는 제자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조품과 가짜가 아닌 진짜 복되신 주님 안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잠깐의 고난에 슬퍼하지 않으며 영원한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됨을 기뻐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