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왕의 초대에 성도가 준비할 예복(마 22:1-14)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자 그들 반응은 어떠했나요?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지속적으로 구원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는 어떤 임금에 비유해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그들은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5절) 밭과 일터로 가 버리고, 종들을 모욕하고 죽입니다. 진노한 임금이 자기 군대를 보내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 도시를 불태웁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다시 네거리 길에서 선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만나는 대로'(10절) 초청해 오라고 명합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거부로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구원 역사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하나님이 초대하신 결과입니다.
주님의 은혜로운 초대를 무시하고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 후쿠시마에 큰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서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고 방사능이 노출되었다는 뉴스를 들을때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 근방 국가인 한국사람들은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큰 일 났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그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나라로 이민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전세계적으로 사망자가 늘어갈 때 백신이 성공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인들에게 큼 기쁨과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때 그 두려움과 위기에서 건져줄 구원자의 초대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그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죽게 되니까요.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는 주님의 은혜로운 초대를 무시하고 거부할까요?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로은 초대를 무시하고 거부하면 남는 것은 심판뿐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복음을 듣고 구원으로 초대받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적습니다. 임금이 잔치 석상을 둘러보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종들을 시켜 그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집니다. 임금의 초대를 받아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이 먹고 즐길 수 있는 단 한 가지 조건은 '혼인예복'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복은 '믿음에 합당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한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그 믿음이 참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가 삶(행위)입니다. 은혜로운 초대로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에게는 마땅히 하나님 백성다운 삶의 열매가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바꾸어 갈까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고, 도덕적 선택이 중요하며, 진짜 인생은 장기판과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장기는 잘못 둬도 다 치웠다가 다음 날 다시 둘 수 있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비롭고도 위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결국에는 다 잘 될 것이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먼 사람과 다리 저는 사람이 예수님께 왔을 때 예수님은 "너희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창녀와 세리들의 모습 그대로를 향해 다가갔지만, 그들이 그모습 그대로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변화되고 치유되고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은 우리들이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어울리게 변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사랑과 정의와 진리와 자비함과 거룩함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 생명의 초대가 없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소망없는 삶인지 알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백성으로 우리의 말과 행동을 고쳐 주소서. 주님의 사랑에 합당하게 반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