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최종 판결, 아름다운 회복(욥 42:7-17)
하나님이 친구들의 말이 옳지 못하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욥과 친구들의 최종 판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친구에게 노하시고 그들의 말이 욥의 말처럼 '옳지 못하다'고 평가하십니다(7절). 친구들이 행위 화복 관계의 일치성을 기계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욥의 고난은 죄악의 결과입니다(4:7-9; 22:4-5). 친구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느라 욥의 현실을 도외시했고, 하나님의 높으신 경륜을 '신앙과 교리'로 제한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내 종'(7-8절, 4회)이라 부르십니다. 그 횟수가 욥기 서막에서 부르신 것(1:8; 2:3)의 2배입니다. 욥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문제이 해결의 '유일한 가능성'인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끝가지 그분을 향해 항변하고 탄식했기 때문입니다.
내 신념으로 누군가를 판단한다면 훗날 하나님이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우리들이 하나님이 주신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사용해서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나의 신념이 그 어떤 신념보다 옳으며 가장 정확하다고 확신해서 내 생각대로 누군가를 판단해서 정죄한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교만하고 오만한 모습입니다. 아무리 나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사용해서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다고 할지라도 내가 주님을 믿는 신자라면 나의 그런 판단을 최종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사항에 대해서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성경을 묵상하고, 또 주님께 묻고 주님의 응답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가운데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는 겸손입니다. 주님의 판단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회복된 욥의 삶에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욥의 회복에는 행복한 결말 이상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중보 기도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은 욥을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갑절의 복을 주십니다(10절). 둘째, 관계 회복이 물질 회복에 우선합니다. 형제자매와 지인들이 그를 찾아와 위로한 일은 하나님 종으로서의 명예 회복과 더불어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셋째, 아들뿐 아니라 딸에게도 동등하게 기업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15절). 욥의 삶은 단순한 회복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법칙과 목적'에 좌우되는 삶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과 나눔'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회복 차원에 머물지 않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나요?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욥은 그 고난을 통하여 귀로만 듣고 알았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더욱 명확하게 보게 되었으며 자기와 같이 고난당하는 이웃들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비난하고 정죄하던 친구들을 긍휼히 여겨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온전한 회복이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디자인하고 의도하셔서 지으셨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참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안에서 겸손히 그리스도께 배우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교제하며 사는 것입니다. 온전한 회복이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과 능력이 더욱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위한 놀라운 사랑과 계획을 가지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둡고 힘들게 느끼며 지났던 고난의 시간마저도 사실을 주님의 빛아래 있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이 보시는 것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성품과 영광과 능력이 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