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만남에는 속죄가 필요합니다(출 30:1-16)
아론은 하루에 몇 번 분향단 위에 향을 피워야 했나요?
성소에는 등잔대, 진설병 상, 분향단이 있습니다. 등잔대는 남쪽에, 진설병 상은 북쪽에 서로 마주하게 둡니다. 분향단은 '내가 (하나님이) 너와 만날 곳'(6절)인 지성소 휘장 앞, 즉 성소의 가장 깊숙한 곳에 둡니다. 아론은 하루에 두 번 등잔대 등불을 관리할 때, 특별한 제조법으로 만든 향(30:34-38)을 분향단 위에 불살라야 합니다(7-8절). 아마도 그 두 번의 시간은 번제단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29:38-42)와 같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성막의 삼중 구조를 볼 때, 성소의 분향단은 하나님의 처소인 지성소와 백성이 제사를 드리는 곳인 뜰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뜰의 번제단과 성소의 분향단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속죄'에 기초함을 보여 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내가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막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 두 개의 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나무를 놋으로 입혀 그 이름을 '놋제단'(출 38:30)이라고도 불린 '번제단'(출 40:6)으로 바깥 뜰안, 즉 출입문 바로 앞쪽에 있었고 희생제물을 드리는 장소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무를 금으로 입혀 그 이름은 '금제단'(출 39:38)이라고도 불린 '분향단'(출 30:27)으로 성소의 가장 안쪽, 즉 휘장 앞쪽에 있었고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이 두단 모두는 우리의 하나뿐인 유일한 제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유일한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 13:10은 "우리에게 한 제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이 제단에 놓은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이어서 15절에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라고 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내가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나의 죄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나아가는 나의 유일한 살길로 믿고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없습니다.
반 세겔씩 생명의 속전을 내야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속전은 속죄의 돈, 즉 죗값으로 지불되는 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15절) 속전을 드리라 명하십니다. 인구 조사의 대상 곧 20세 이상 모든 남자는 빈부에 상관없이 모두 반 세겔을 내야 합니다. 생명의 속전으로 거둔 돈은 성막 관리에 사용합니다. 본문에는 왜 속전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성막에 관한 본문을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은 죽음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28:35, 43 등). 이에 하나님은 목숨을 대신하는 값인 속전을 받으심으로써 성막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그들이 죽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속전을 내는 금액이 동일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지식 면에서나 체험에서나 능력에서나, 성취, 열성, 그리고 헌신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겠지만 속죄의 근거는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속죄에 관해서만은 위대한 사도나 그리스도의 양 떼 중에 지극히 작은 성도도 동일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며 또한 매우 복된 진리입니다. 모든 자들이 그 헌신 면에서나 결실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을 수 있나, 헌신이나 결실이 아닌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들의 안식의 확고하고 영원한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외모로 보지 않고, 구속받아야 할 존재로 보십니다. 부자는 반 세게를 보잘것 없는 것으로 보고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시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피로 치르신 대가를 늘 기억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