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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멀어진 유다 가정의 시련(창 38:1-11)

Posted by 행복한 말씀묵상팀 on

유다의 결혼 아들들( 38:1-5)   

1 그 무렵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히라라고 하는 아둘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와 함께 살았다.

2 유다는 거기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고 하는 사람의 딸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내와 동침하였다.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유다가 그 아들 이름을 에르라고 하였다.

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번에는 아이의 어머니가 그 아들 이름을 오난이라고 하였다.

5 그가 또다시 아들을 낳고, 이름을 셀라라고 하였다. 그가 셀라를 낳은 곳은 거십이다.

아들의 죽음( 38:6-11)

6 유다가 자기 맏아들 에르를 결혼시켰는데, 그 아내의 이름은 다말이다.

7 유다의 맏아들 에르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게 하셨다.

8 유다가 오난에게 말하였다. "너는 형수와 결혼해서, 시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해라. 너는 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

9 그러나 오난은 아들을 낳아도 그가 자기 아들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바닥에 쏟아 버리곤 하였다.

10 그가 이렇게 한 것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난도 죽게 하셨다.

11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셀라가 다 클 때까지, 너는 네 친정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과부로 살고 있거라."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었다가는, 셀라도 제 형들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말씀묵상>

유다가 가나안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셉을 종으로 판 후 형제들의 가정을 평온하지 못합니다. 38장은 중심인물이 요셉에서 ‘유다’로 바뀌면서 유다의 허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아 엘, 오난, 셀라를 낳습니다. 가나안 사람과의 결혼은 아브라함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입니다(24:3-4). 유다는 여인을 ‘보고’(히, 라아) 그녀를 ‘데리고’(히, 라카흐) 동침하는데(2절), ‘보다’와 ‘취하다’ 두 단어의 연결은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따 먹은 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는 일 등에서 부정적 뉘앙스로 쓰였습니다(3:6; 6:2). 요셉을 종으로 판 형제들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집니다. 

내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다면, 그 증거는 무엇일까요?

통장에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 할지라도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인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대해 알고 있어도 그것을 요청하여 우리의 것으로 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 안에서만 믿어서는 안 되고 삶 안에서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믿음의 전쟁터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영생을 얻으십시오.”(딤전 6:12)라고 가르칩니다.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면류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히 12:4). 

아들들이 잇달아 죽자 며느리 다말에 대한 유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장자 에르가 성장하자 유다는 다말을 며느리로 데려옵니다. 이때는 요셉이 팔려 간 후 20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에르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여 하나님이 그를 죽게 하십니다. 유다는 수혼제 관습에 따라 둘째 오난을 다말에게 들어가게 합니다(8절). 수혼제는 과부가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는 관습입니다. 하지만 오난은 다말이 낳을 아이가 자기 계보와 멀어질 것을 알고 성교 중절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악하게 보시고 그도 죽게 하십니다. 유다는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유다의 속내는 셀라도 죽을까 염려해 수혼제를 지키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수혼제 의무를 거부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신 25:5-10). 

내 삶이 평온하지 못하게 흘러갈 때 먼저 점검할 것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우리를 평온하지 못하게 하는 풍랑을 좋아하는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풍랑이라고 해서 다 나쁘고 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풍랑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과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웬만해서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며 자력으로 죄나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풍랑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우리와 소통하시며 우리의 자아를 무너뜨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풍랑을 만날 때 먼저 하나님을 ‘실제로 믿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풍랑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풍랑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풍랑을 잠잠케 하실 수 있음이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풍랑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풍랑이 오히려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가 인생에서 풍랑을 만날 우리 자신을 돌아볼 있는 눈을 주소서. 우리 안에 죄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보혈 앞에 내려놓게 하소서. 우리가 만난 풍랑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 들고 나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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