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없는 자의 광기 어린 판결(삼상 22:11-23)
아히멜렉을 추궁하는 사울(삼상 22:11-16)
11 그러자 왕은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은 물론, 놉에 있는 그의 집안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왕에게로 나아왔다.
12 사울이 호통을 쳤다. "아히둡의 아들은 똑똑히 들어라!" 아히멜렉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말씀하십시오!"
13 사울이 그를 꾸짖었다. "네가 왜 이새의 아들과 함께 공모하여 나에게 맞서려고 하였느냐? 네가 왜 그에게 빵과 칼을 주고, 왜 그가 하여야 할 일을 하나님께 물어서, 그가 오늘날과 같이 일어나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하도록 하였느냐?"
14 그러자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모든 신하들 가운데서 다윗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더구나 그는 임금님의 사위인 동시에 경호실장이며, 이 궁중에서 매우 존귀한 사람이 아닙니까?
15 그가 할 일을 하나님께 여쭙는 일을, 제가 오늘에 와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님은 이 종이나 이 종의 온 집안에 아무 허물도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 종은 이런 일은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16 그런데도 왕은 이런 선언을 내렸다. "아히멜렉은 들어라. 너는 어쨌든 너의 온 집안과 함께 죽어 마땅하다."
제사장들을 죽인 도엑(삼상 22:17-23)
17 그리고 왕은 자기 곁에 둘러 서 있던 호위병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는 당장 달려들어 주님의 제사장들을 죽여라. 그들은 다윗과 손을 잡고 공모하였으며, 다윗이 도망하는 줄 알았으면서도 나에게 귀띔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의 신하들은 손을 들어 주님의 제사장들을 살해하기를 꺼렸다.
18 그러자 왕이 도엑에게 명하였다. "네가 달려들어서 저 제사장들을 죽여라." 그러자 에돔 사람 도엑이 서슴없이 달려들어서 그 제사장들을 죽였는데, 그가 그 날 죽인 사람은 모시 에봇을 입은 제사장만도 여든다섯 명이나 되었다.
19 사울은 제사장들이 살던 성읍 놉에까지 가서, 주민을 다 칼로 쳐죽였다. 그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젖먹이, 소 떼나 나귀 떼나 양 떼를 가리지 않고, 모두 칼로 쳐서 죽였다.
20 아히둡의 손자이며 아히멜렉의 아들인 아비아달은, 거기서 피하여 다윗에게로 도망하였다.
21 아비아달은 다윗에게, 사울이 주님의 제사장들을 몰살시켰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말하였다. "그 날 내가 에돔 사람 도엑을 거기에서 보고서, 그가 틀림없이 사울에게 고자질하겠다는 것을 그 때에 이미 짐작하였소. 제사장의 집안이 몰살당한 것은, 바로 내가 책임져야 하오.
23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함께 지냅시다. 이제 나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기도 하니,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것이오."
<말씀묵상>
사울은 어떤 죄목으로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을 죽이려 했나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바른 판단 능력을 상실합니다. 사울은 대제사장 아히멜렉과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왕궁으로 부릅니다. 사울은 아히멜렉에게 다윗의 반역을 도왔느냐며 추궁합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충신이고 왕의 사위이며 왕의 경호실장이고 왕의 사위이기에 도운 것이지, 반역을 도운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합니다. 실상은 다윗이 아히멜렉을 속였기에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윗을 도운 것입니다. 사울은 아무런 조사나 검증 절차도 없이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판결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기 어린 판결입니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는데 혈안이 된 사울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을 죽이고,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나의 감정과 판단은 어떠한가요?
우리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에 담긴 뜻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겁 없이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사람에게 덤벼들거나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편의주의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을 믿되 내 편한대로 내 중심에서 적당히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으로 믿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시해 버립니다. 이와 같이 세상과 타협해서 믿는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욕되게 되고 불신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우의 신한들이 제사장 죽이기를 싫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울은 제사장들을 바역죄로 몰아 신하들에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신하들은 이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사장이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으면 처벌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단지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반역죄로 몰아 제사장 집안을 몰살하는 것은 불의한 처사입니다. 도엑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에돔사람이기에 거리낌 없이 85명이나 되는 제사장을 죽이고 그들이 살던 성읍 주민까지 전멸시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비아달은 다윗 진영에 합류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주의함과 안일함이 부른 대참사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내가 동조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면 감히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을리가 없습니다. 아담은 탐욕을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보다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자기가 욕심내는 것을 먼저 취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우리 하나님을 참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병과 고통을 두려워합니다. 죽음과 지옥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면 이 모든 두려움을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가 있고, 우리는 평화와 행복과 승리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불의함이 위세를 떠리고 하나님 이름은 땅에 밟히는 현실을 보며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악의 자리에 앉지도 서지도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충실한 군사로서 늘 악을 멀리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며 경건하게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