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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백성의 품성, 겸손함과 순수함(눅 18:9-17)

Posted by 행복한 말씀묵상팀 on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어떻게 달랐나요?

의의 기준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백성의 존경을 받던 사람으로, 스스로 경건하다고 자부했습니다. 반면 세리는 동포의 고혈을 착취해 로마에 바치는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혀 멸시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지만,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합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바리새인이 아니라 겸손한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으로 사람을 멸시하는 태도와 종교적 교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사에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내가 기도하는 모습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할까요?

요즘 같은 집에 사는 가족끼리의 의사소통의 부재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가족으로서의 기능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나의 창조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하나님께 하는 기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며 멸시하는 태도로 하나님께 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기도하는 동기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기도합니다. 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연결 지으셨나요?

어린아이의 특징은 순수함과 의존성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를 데려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시며,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또 어린아이가 생존을 위해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과 절대 의존 신앙입니다. 

내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에 있는 알 수 없는 어떤 신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낳으셨고 우리를 기르셨고 지금도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부모를 전적으로 바라보고 의지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라 가듯이, 어린아이가 엄마의 음성을 알고 반응하듯이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하나의 학문인 것처럼, 하나의 이념인 것처럼, 하나의 종교의식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다른 이들을 멸시하고 차별하여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따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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