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의 표적을 보고 하나님 아들임을 알라(요 10:31-42)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왜 신성 모독이 되지 않을까요?
유대인들에게 신성 모독은 그 무엇보다 큰 죄입니다. 그들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신성 모독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인데 하나님 행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시편 82편 6절에서 보듯 하나님의 사람들을 신이라고 칭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자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이 어떻게 신성 모독이 되느냐고 반문하십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없이 성경을 해석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표적과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속해서 계시하셨음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면 그들과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구신지,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계시하시는 책입니다. 성경을 하나님과 관계없이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는 신성모독입니다. 성경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라고들 말합니다. 편지를 쓴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않은 채 내가 사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게 되면 성경은 나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 하나님의 말씀과 표적은 어떤 점에서 부합하나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신성 모독 의혹을 해소할 방도를 제공하십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잣대는 바로 그분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와 다르다면 예수님의 역사를 믿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행하시는 치유와 말씀이 창조자 하나님의 역사와 똑같음에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도 끝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완악함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심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심을 알지 못하면 성경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심을 알지 못하면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특히 우리가 지금 묵상하고 있는 요한복음에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알때만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의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신 사건이 어떻게 우리를 위한 사건이며 실제적으로 동일하게 우리에게 일어난 우리의 사건이 되었는지를 아들이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 된 연합 안에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들과 아버지의 하나이심을 알고 믿어야 우리는 복음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의 기도:
우리가 주님이 하신 모든 일들을 보고 주님을 믿습니다. 날마다 떠오르는 해를 볼 때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을 때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구원하신 사람들의 밝은 얼굴을 볼 때마다, 함께 모여 나누고 기쁘게 찬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게 해 주세요. 주님을 믿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