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로서 행하신 첫 표적, 물이 포도주 되게 하다(요 2:1-12)
예수님은 왜 어머니 요청을 즉각 받아들이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을 기적 행사자로만 아는 것은 그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첫 세 구절(1:1-3)이 보여 주는 예수님의 모습은 창조자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도 계속해서 창조하는 일입니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 뜻대로 창조 사역을 행하십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게 있는 신적 능력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그가 기적을 행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때’ 곧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아니라 하시며 어머니 요청을 즉각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과 상호 내주하시며 그분 뜻과 시간표를 따라 창조 사역을 행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하나님 뜻과 시간에 따라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때를 따라 내가 더 기다리며 준비할 일은 무엇인가요?
그동안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 보이는 일들까지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비춰봐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집을 지을 때 기울기를 측정하는 ‘다림줄’에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서 비뚤어진 것은 사실 아무리 견고하게 세워진 집이라도 하나님께는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잘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자리로 초청하고 계신지 잘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일에 기쁘게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모습입니다.
물 떠 온 하인들은 표적을 통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게 되었을까요?
창세기에서 창조는 말씀에 의해 무엇이 생겨나거나 변화되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자 예수님은 창조 사역을 행하십니다. 창조자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말씀으로 명하시자, 만물이 지은 바 ‘된’ 것처럼(1:3) 물이 포도주가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듯(창 1:1) 예수님도 표적을 창조하십니다(11절).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예수님의 표적행하심에 모두 ‘만들다’(포이에오)라는 헬라어가 사용됩니다. 예수님이 표적 행하신 것은 계속 창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표적을 본 제자들은 비로소 그분이 창조자심을 알고, 그분의 영광을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창조자로 고백하는 사람은 성경과 현실에서 그분의 창조 사역을 날마다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일상에서 예수님의 창조 사역을 어떻게 경험하나요?
나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날마다 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생명도 없고, 능력도 없고, 소망도 없고, 사랑도 없고, 진리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창조사역을 통하여 산 영이 되고,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을 누리고, 능력 있게 살아가며, 소망이 가득하고, 사랑하며, 진리안에서 행하는 것을 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능력으로도, 그 어떤 지혜로도, 그 많은 돈으로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예수님께서 날마다 행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도 날마다 새창조의 역사를 행하시기를 사모합니다.
나의 기도:
주님과 주님이 행하신 일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잘 분별하고 내 삶을 조정하여 주님의 일에 기쁘게 동참하게 하소서. 주님이 행하시는 새창조의 사역을 사모합니다. 이미 이 땅에 임하여 자라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