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와 어리석은 자의 다른 선택(전 7:1-14)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전 7:1-10)
1 명예가 값비싼 향유보다 더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더 중요하다.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얼굴을 어둡게 하는 근심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4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
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더 낫다.
6 어리석은 사람의 웃음소리는 가마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와 같다. 이 또한 헛되다.
7 탐욕은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고,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8 일은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가 더 좋다. 마음은 자만할 때보다 참을 때가 더 낫다.
9 급하게 화내지 말아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품에 머무는 것이다.
10 옛날이 지금보다 더 좋은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라. 이런 질문은 지혜롭지 못하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전 7:11-14)
11 지혜는 유산을 받는 것만큼이나 좋은 것이니, 이 세상에서 살면서 그 덕을 보기 때문이다.
12 돈이 사람을 보호하듯, 지혜도 사람을 보호한다. 그러나 지혜를 깨우쳐 아는 지식이 더 좋은 까닭은, 지혜가 그 사람의 목숨을 살려 주기 때문이다.
1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
14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
<말씀묵상>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나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삶에는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명예가 값비싼 향유보다 더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더 중요하다.”(1절)라고 진술합니다. 지혜자는 ‘좋은 이름’ 곧 하나님 앞에서 얻은 ‘좋은 평판’을 더 가치 있게 여깁니다. 그리고 ‘출생’보다 부조리한 세상을 떠나 안식에 들어가는 ‘죽음’을 더 좋은 것으로 여깁니다. 또한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고 합니다(4절). 지혜자는 죽음을 보며 ‘지금의 삶’을 성찰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을 ‘조급함과 분노’로 규정하고, 일의 시작보다 끝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8-9절). 일의 시작은 열정으로 가능하지만, 일의 끝은 그 끝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다림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내가 포기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매 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왜 할 것인가를 놓고 선택에 선택을 거듭합니다. 인생에서 선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순간 순간의 선택에 우리의 인생이 달려 있습니다. 선택의 목표는 ‘더 나은 쪽’입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쪽을 선택하기 위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이 더 나은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나은지를 아는 지식과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라는 지극히 비성경적이고, 불신앙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번갈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뜨거운 사막에서 그늘은 생명을 보호해 줍니다. 전도자는 ‘그늘’이란 이미지를 사용해 지혜와 돈을 비교합니다. 사람이 ‘돈의 그늘’에 있으면 가난에서만 벗어나지만, ‘지혜의 그늘’에 있으면 삶의 위험에서 건짐을 받기에 지혜가 돈보다 유익하다는 것입니다(12절). 그럼에도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13절) 곧 결정하신 일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번갈아 주심으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십니다(4절). 그러므로 사람은 형통할 때 기뻐하고, 곤고할 때 자기 삶을 성찰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해야 합니다.
곤고할 때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날과 힘든 날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날 하루하루는 얼마나 덥고 또 얼마나 추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이 세상만 바라보며 사는 것은 참으로 불안하고 허망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이 세상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형통한 날에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다는 인생의 흔적을 남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