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 기도와 송축의 기도(히 13:18-25)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히 13:18-21)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한 점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모든 일에 바르게 처신하려고 합니다.
19 내가 여러분에게 좀더 속히 돌아가게 되도록 기도하여 주시기를 더욱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화의 하나님이
21 여러분을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게 다듬질해 주셔서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자기가 기뻐하시는 바를 이루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문안과 축도(히 13:22-25)
22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이 권면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권유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짤막하게 썼습니다.
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풀려나온 것을 알려드립니다.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여러분을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24 여러분의 모든 지도자와 성도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25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말씀묵상>
히브리서 기자가 수신자들에게 요청한 중보 기도는 무엇인가요?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사역을 풍성하게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수신자들에게 두 가지 기도를 부탁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선한 양심으로 더욱 하나님의 뜻에 맞게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고(18절), 둘째는 자신이 속히 편지 수신자들의 공동체로 복귀하는 것입니다(19절).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평강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20절). 하나님은 양들의 큰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자 가운데 일으켜, 하늘 성소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게 하시고,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뜻을 온전히 이루시길 송축합니다(21절). 중보 기도를 할 때마다 교회는 견고해지며 복음의 능력은 강화됩니다.
선한 양심으로 주님 일을 감당하도록 내가 기도로 도울 사역자는 누구인가요?
사람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고 마음에서 멀어지면 신뢰가 약해집니다. 신뢰가 약해지면 그 사람의 말에 대한 권위가 떨어져서 순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이 모든 것을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하게 행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선한 의도로 하더라도 오해와 불신을 가지고 왜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사역자나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이나 연약함이 있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가 선한 양심으로 일하도록 의지를 드려 사모하고 주님께서 우리의 양심을 지켜주시고 힘주셔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 신앙생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안으로 불러 구원하셨지 혼자 사는 존재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나 그 말씀을 듣는 자나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도록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자신이 전하는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고 호소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유대교 회귀와 일부 수신자의 미성숙한 신앙을 언급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이 권면의 서신을 잘 받아들이길 호소합니다(22절; 2:1-4; 5:12).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영혼의 유익을 위한 견책의 말씀을 배척하는 문화가 더욱 팽배할 것입니다(딤후 4:3-4). 그는 믿음의 형제 디모데의 석방 소식을 전하며, 디모데가 자신에게 오면 함께 그들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합니다(23절). 바울의 참아들 디모데의 석방 소식을 전한다는 사실에서 히브리서 기자와 바울 사이의 연대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문안과 축도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축도와 송축은 기독교의 복된 유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견책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이루려고 하시는 것은 우리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수족들입니다. 하나님은 머리이십니다. 그래서 수족인 우리를 통해 머리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살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꺾으려고 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어떻게든 꺾으려는 게 우리의 기도일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형제의 모습을 볼때 우리는 서로를 사랑으로 견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주님" 부르며 신앙생활하면서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실 불법을 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형제의 견책을 들을 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고, 내 생각에는 억울하더라고 들은 견책의 말씀을 가지고 먼저 주님앞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자신에게 복되고 유익한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중보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교회 지도자들과 지체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것을 허락해 주셔서 하나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성경에 기록된 권면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 영적 성숙을 이루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