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위해 오신 죄 사함의 주권자(마 9:1-13)
마가복음은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오는 과정을 어떻게 묘사하나요?(막 2:1-12)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하는 열린 문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실 때 사람들이 병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려옵니다(막 2:1).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2절) 중풍 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이 이를 신성 모독으로 여기자,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확증해 주십니다. 무리는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들'(8절, 새번역)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단수형인 '사람'으로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은 복수형인 '사람들'입니다. 이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와 성도에게 부여된 사명임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믿음을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물질세계와 영적세계를 다스리는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다의 폭풍을 잠잠케 하셨고, 사람의 내면을 황폐하게하고 요동케했던 귀신을 내어쫓아 잠잠케 하셨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자신에게 죄를 없애는 권위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옥죄고 있는 죄로 부터 자유케하시는 권위가 있음 보여 주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권위는 당시 세상의 권위자들이 짓누르는 힘으로 권세를 부리는 것과는 정반대로 사랑으로 자유롭게 섬기는 모습으로 모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이런 권위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겨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신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는 말씀에서 '희생제물'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사역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세리 마태를 제자 삼으신 예수님은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하십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정부의 하수인으로 간주되었고, 백성을 착취하는 자로 손가락질받았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들과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식적 율법 준수를 의미하는 '희생제물'이 아닌 진실한 '자비'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죄인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경건의 모양이 아닌 진실한 자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자비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경건한 행위야말로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까요?
예수님 당시의 정교지도자들은 도덕적.영적인 감염원인 죄인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자신이 병든 사람을 고치러 오신 의사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습니다. 의사가 격리실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떻게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분을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그분의 몸의 지체가 되었음을 믿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죄로 병든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온 세계의 권위자 이신 주 예수님을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우리를 옭아매어 종노릇하게 했던 모든 죄와 억압에서 자유케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 주님의 마음이 향한 곳에 우리의 마음이 향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복음이 그들에게도 복음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