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위한 구주, 새 시대를 여신 예수님(눅 5:27-39)
예수님이 레위(마태)의 집에서 먹고 마실 때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비난했나요?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레위(마태, 마 9:9)가 세관에 앚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27절)라고 하십니다.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름으로써 제자로 부름받는 성도가 취할 본보기가 됩니다. 레위는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풉니다. 당시 세리는 죄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레위의 집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32절)라며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며, 그를 깨끗하게 하셔서 제자 삼으신 분입니다.
내 좁은 소견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제한하지는 않나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자신들의 생각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인류에는 큰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자기 생각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신의 선택을 자유롭게 만든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어리석게 만들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다가 자신의 생각대로 분노하여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생각대로 내가 같이 어울리고 사랑할 사람과 어울려서는 안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선택하고 나눕니다. 심지어 내 생각대로 내 기준대로 예수님이 사랑해야 할 사람과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정해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내 생각과 기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사랑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생각과 기준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면,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닮지 않았다면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회개해야 해야합니다.
'새 옷'과 '새 포도주' 비유의 요지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신 분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침례 요한이나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달리,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느냐고 따집니다. 유대인들은 '금식'을 경건의 표지이자 정결의 방편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혼인집 비유를 드십니다. 손님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먹고 마시지만, 신랑을 빼앗길 때가 오면 그때는 금식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지금 그들과 함께 계시지만, 훗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시사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혼인집과 관련된 '새 옷'과 '새 포도주'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두 비유의 요지는 새 시대에는 새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내가 적극적으로 바꿀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요?
사람이 어느 나라에 사느냐에 따라 지켜야할 법이 달라집니다. 심지어 삶의 방식마저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속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우리를 다스리는 하나님이 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죄와 탄식과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탄식하며 살아야할 인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의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상속자답게, 부활할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길을 잃어버리 나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스스로 깨끗케 할 수 없는 나의죄를 씻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 복된 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