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죄의 종교를 넘어 자비의 하나님을 드러내시는 예수님(마 12:1-21)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율법의 참뜻을 밝히시다(마 12:1-8)
1 그 무렵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삼상 21:6
4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오직 제사장들 밖에는, 자기도 그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5 ㉡또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민 28:9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 ㉢호 6:6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하나님의 종, 온유한 메시아의 길(마 12:9-21)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서,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다.
10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그것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그것을 잡아 끌어올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13 그런 다음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미니, 다른 손과 같이 성하게 되었다.
14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15 그러나 예수께서 이 일을 아시고서, 거기에서 떠나셨다. 그런데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6 그리고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17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8 ㉤"보아라, 내가 뽑은 나의 종, 내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자,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것이니, 그는 이방 사람들에게 공의를 선포할 것이다. / ㉤사 42:1-3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외치지도 않을 것이다.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20 정의가 이길 때까지,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
21 ㉥이방 사람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 것이다." / ㉥사 42:4(칠십인역)
<말씀묵상>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즉시 이것을 율법 위반으로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의 필요가 아니라 규정의 준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이 굶주렸을 때 거룩한 떡을 먹은 사건을 언급하시며 율법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것임을 상기시키십니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에도 일하지만 죄가 되지 않는 이유는 성전이 안식일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 선언하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자 율법의 참된 해석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이며, 그 마음을 알았다면 제자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바리새인들의 회당으로 들어가십니다. 그 회당은 그들의 해석과 권위가 지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안식일에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한 함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을 다시 밝히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악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며 안식일은 생명을 살리는 날임을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선한 행동을 보고도 마음을 닫고, 오히려 예수를 죽일 모의를 시작합니다. 정죄의 종교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불편해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의를 피하여 물러가시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을 고치십니다. 이때 마태는 이사야 42장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사역을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소리 높여 다투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하나님의 종이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폭력이나 강압이 아니라 온유함과 자비로 정의를 세우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정죄와 폭력적 종교성과는 완전히 다른 길입니다. 예수님은 은밀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참된 메시아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이방인들까지 소망을 얻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율법의 규정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보고 있는가? 정죄의 시선이 아니라 자비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가? 예수님의 온유한 방식이 내 삶의 방식이 되고 있는가?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상한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종이십니다. 그분을 따르는 제자는 정죄의 종교를 벗어나 자비의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율법의 규정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보게 하시고 자비를 선택하는 눈을 주옵소서. 정죄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온유함을 본받게 하옵소서. 제 삶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의 자비와 정의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