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자의 비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욥기 11:1-11)
소발이 욥의 발언을 '도'(개역개정)라고 칭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고난당하는 사람을 위로할 때는 그의 처지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소발은 친구들처럼 욥을 공격하며 발언을 시작합니다. 그는 욥이 말 많은 사람이라고 비판합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마련이니 결코 의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2절). 그는 스스로 의롭다 하는 욥의 주장(9:15, 20-21)을 언급하며 이를 '자랑하는'말과 '비웃는 말'로 이해합니다(3-4절). 한 가지 문제는 소발이 욥의 발언을 '도'로 규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도'(히, 레카흐)는 진리로 수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소발은 욥의 탄식을 고난당하는 자의 실존으로 듣지 않고 '교리적 진술' 정도로 이해하고 평가합니다.
남의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우리가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다 안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있는 그대로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고전 13: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내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오류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맞고 너는 틀려.'라는 태도가 아니라 열린마음으로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큰 방향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진리되신 말씀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소발이 말하는 '지혜의 비밀'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은 인간의 탐구 영역 너머에 계신 분입니다. 소발은 욥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지혜의 비밀'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욥에게 지혜의 비밀을 깨닫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5-6절). 그러면서 하나님이 욥이 지은 모든 죄에 대해 처벌하지 않으시고 욥이 지은 죄보다 훨씬 가볍게 처벌하신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소발은 하나님의 '비밀'이 높이.깊이.길이.넓이 면에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고 합니다(7-9절). 소발도 욥처럼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는 분으로 언급합니다(10절; 9:11-12절). 그러나 그 의미는 다릅니다. 욥은 감히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불가해한 하나님을 묘사한 반면, 소발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불가해한 행동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비밀' 앞에 취할 바른 태도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아낼 수 없고 전능하신분의 무한하심을 다 측량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지헤의 비밀'을 우리에게 감추지 않으시고 알려주시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 15: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지혜의 비밀'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추지 않으시고 다 알려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겠어?'하고 덮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로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주님을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말씀을 꺠달을 수도 없는 유한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며 우리에게 주님이 누구신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친히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치 모든 진리를 알 수 있는 사람인것처럼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에 이웃의 말에 경청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진리를 알고 행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