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을 준비하는 신실한 청지기(마 24:36-51)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가 노아 홍수 사건에서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요?
재림의 때를 예축하거나 안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외에 아무도 그때를 알지 못합니다. 노아 홍수 때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현세의 즐거움에 빠져 심판의 날이 다가옴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은 도둑맞은 집같이 허망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밭을 갈거나 맷돌질을 하다가 주님을 맞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시기를 알 수 없기에 성도가 대비할 수 있는 최선은 깨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오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이 오셨을 때 부끄러워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반겨 맞을 수 있도록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오실 수 있다'는 생각이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오늘 주님이 오실 수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오늘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이 끝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은 이 세상의 종말이고 주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해 보십시오. 오늘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이 끝나고 주님 앞으로 간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기쁘고 설레는 일입니까?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입니까? 그 대답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내가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을 알고, 나도 그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삶을 살아왔다면 주님 앞에 서는 두려움보다는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오실 수 있다. 오늘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깨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과 '악한 종'의 결국은 어떻게 대조되나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주인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마치 주인이 자기 앞에 있는 것처럼 행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합니다. 그렇게 행하는 종은 주인이 언제 오더라도 칭찬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종'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채 자기 마음대로 행합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는 뒤로하고 악을 행하며 허랑방탕하게 지냅니다. 결국 생각하지 않은 날 주인이 와서 그를 엄벌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성도의 삶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재림의 날에 받을 상급을 기대한다면, 주인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하는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현재 내 삶을 보시고 어떤 종이라고 평가하실까요?
주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연약함이나 한계도 잘 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그러한 연약함과 한계를 책망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반응이 어떠한지는 살펴보실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와 반응은 어떻습니까? 알아두면 좋을 정보에 지나지 않습니까? 아니면 다른 그 어떤 일보다도 최우선으로 순종해야할 중요하고 시급한 말씀으로 다가옵니까? 주님은 그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공부할 때 하나의 지식을 습득하듯이 끝내면 안됩니다. 성령하나님께 그 말씀을 가지고 물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통항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뜻과 의도가 무엇인지 알려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 습득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으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주님의 그 약속이 우리에게 기쁘고 설레는 약속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되었듯이, 주님과 함께 교제해온 시간들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이유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등을 돌리고 세상을 눈을 향하여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아시고 주님께 눈을 두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두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