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요 18:1-14)

Posted by SUKIN HONG on

체포되시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이셨나요?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자발적으로, 당당히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꺼이 감당하기로 하셔서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4절). 그분은 체포하러 온 자들 앞에서 스스로 정체를 밝히시며, 제자들이 체포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8-9절).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에게 자신은 기꺼이 죽음의 잔을 마시겠다고 하셨습니다(10-11절). 예수님은 신성을 지닌 전지전능한 하나님 아들이시지만 대속 제물이 되는 죽음의 길을 가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체포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십자가 사명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기꺼이 감당하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위해 내가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 편을 선택할 일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의 길을 자발적으로 당당하게 걸어가셨습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외아들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내어 주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첫 발은 바로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거부하고, 반역하여 원수의 편에 선 우리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셨고 외아들을 구원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하나님의 그 사랑의 선택에 백퍼센트 같은 마음으로 순종하여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사랑할 것인지 사랑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오래참고,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기를 이렇게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고전 13:4-7). 

예수님이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 심문 받으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인류 대속을 위한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을 끄고 가 먼저 심문한 사람은 그해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였습니다. 예수님 심문의 주체인 산헤드린 공회 의장은 가야바지만, 이미 대제사장을 지냈고 실세였던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것은 당시 힘의 역학 관계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가야바는 민족을 살리기 위한 희생양 이론을 펼친 사람입니다(11:47-52). 그러므로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가 심문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희생양이 될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세속적으로는 로마 총독과 유대 권력자들 간의 정치적 계산에 ‘희생’된 것이지만, 하나님 관점으로는 속죄양으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희생의 길은 우리를 구원한 유일한 대속의 길입니다. 

나의 작은 희생으로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정하신 때에 반드시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기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잡히지 않으시다가 정하신 그 때에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의 배우자와 가족과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직장동료와 이웃들을 보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들이 변화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왜 나만 계속 져줘야 하느냐고, 왜 나만 계속 억울해야 하느냐고, 왜 나만 계속 희생해야 하느냐고 폭발합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내가 내 힘과 내 방법으로 내가 정한 때에 이 일들을 이루는 것이 더 좋고, 더 완벽하고, 더 선하겠느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과 방법과 그분의 때에 이일을 이루는 것이 더 좋고 , 더 완벽하고, 더 선하겠느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변화되는 속도가 더디다고 화를 내고 불평할 만큼 변화되었는가? 무슨 일이든지 기꺼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순종할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셔서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저도 사랑을 선택하기를 원해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을 때,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사랑을 선택하기를 원해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편에 서기를 원해요. 여전히 연약하고, 여전히 문제투성이인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편에 서기를 원해요. 주님을 사랑하기로 형제자매를 사랑하기로 선택한 나의 선택을 통해서 주님이 일해 주시기를 소망해요. 주님이 나를 날마다 새롭게 하셔서 나를 통해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보게 해주세요. 나를 통해 그들이 살아계신 주심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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