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으로 증명되는 언약에 대한 성실성(말라기 2:10-16)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책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언약에 성실하신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 또한 언약에 성실하길 원하십니다. ‘배신하다(거짓을 행하다)’라는 표현(10절)은 ‘불성실하다’는 뜻으로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형제끼리 사랑하며 돕는 대신, 서로 거짓을 행하며 악행을 지질렀습니다. 이러한 형제간의 배신과 불성실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성실로 연결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이방 신을 섬기고 이방 민족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야곱의 가문에서 끊어 버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웃 사랑 없는 하나님 사랑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언약에 대한 성실함은 이웃 사랑을 통해 증명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보아야 할 이웃은 누구인가요?
주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일 큰 두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이웃은 누구일까요? 이제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이웃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할 때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주님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보아야 할 이웃의 대상 중에 강도만난 사람이 우선순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고, 그로 인해 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두 가지 죄는 무엇인가요?(16절)
이웃 중에 가장 가까운 이웃은 배우자입니다. 하나님은 학대받는 아내들의 ‘눈물과 울음과 탄식’을 들으시고 이것 때문에 남편들의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증인 되시는 언약입니다. 아내를 학대하고 불성실하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불성실한 행동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남편을 미워하신다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하나님이 에서를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의미로 쓰신 단어와 같습니다(1:3). 이는 아내를 학대한 남편을 하나님 언약에서 끊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배우자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 언약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향해 고쳐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어 하고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분명이 다르듯이 생각이나 말이나 소망에 있어서 나의 배우자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은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의 배우자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갇혀 배우자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그에 대해서 더욱 알아가고 이해하기를 멈추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물론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과 성격 등으로 갈등이 있을 때도 있지만 서로를 하나님께서 한 몸으로 주신 존재인 것을 기억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용납하며 대화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가능한 한 도와주고 채워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배우자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임을 기억하며 축복하며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그런 이웃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되어주셨던 주님의 길을 따라 걷기를 원합니다. 먼저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주님을 닮은 이웃으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