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을 파는 형들, 애통해하는 야곱(창 37:25-36)
형들을 찾는 요셉(창 37:25-28)
25 그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고개를 들고 보니, 마침 이스마엘 상인 한 떼가 길르앗으로부터 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낙타에다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27 자,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고, 차라리 그 아이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자. 아무래도 그 아이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피붙이이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28 그래서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갈 때에, 형제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스무 냥에 팔았다. 그들은 그를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를 속이는 형제들(창 37:29-36)
29 르우벤이 구덩이로 돌아와 보니, 요셉이 거기에 없었다. 그는 슬픈 나머지 옷을 찢고서,
30 형제들에게 돌아와서 말하였다. "그 아이가 없어졌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31 그들은 숫염소 한 마리를 죽이고, 요셉의 옷을 가지고 가서, 거기에 피를 묻혔다.
32 그들은 피묻은 그 화려한 옷을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말하였다. "우리가 이 옷을 주웠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3 그가 그 옷을 알아보고서 부르짖었다. "내 아들의 옷이다! 사나운 들짐승이 그 아이를 잡아 먹었구나. 요셉은 찢겨서 죽은 것이 틀림없다."
34 야곱은 슬픈 나머지 옷을 찢고, 베옷을 걸치고, 아들을 생각하면서, 여러 날을 울었다.
35 그의 아들딸들이 모두 나서서 그를 위로하였지만, 그는 위로받기를 마다하면서 탄식하였다. "아니다. 내가 울면서, 나의 아들이 있는 스올로 내려가겠다." 아버지는 잃은 자식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36 그리고 미디안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요셉을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그는 바로의 신하로서, 경호대장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말씀묵상>
요셉에 대해 유다가 형제들에게 제안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평안이 깨진 형제 관계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됩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은 후 ‘앉아 음식을 먹는’ 형제들은 인면수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셉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그들은 멀리서 이집트로 내려가는 상인 무리가 오는 것을 봅니다. 이번에는 유다가 나서서 요셉을 죽이지 말고 상인들에게 넘기자고 제안합니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릅니다. 요셉은 상인들에게 은 20에 팔립니다. 성인 남자 노예가 은 30세겔에 거래되었음을 볼 때(출 21:32), 요셉은 아직 어렸기에 은 20세겔에 팔린 것으로 보입니다. 요셉은 자유인에서 노예로 전락합니다. 이는 장차 이집트에서 종살이할 이스라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미운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나요?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를 계속 화나게 만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운 마음이 드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그들의 관심에 반응하는 만큼만 가까이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일 때 그들을 향한 사랑을 느낍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반응에 따라 변하지 않고 언제나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숫염소 피가 묻은 화려한 옷을 본 야곱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이 팔려 갈 때 르우벤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르우벤은 구덩이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요셉을 구출하지 못한 것을 자책합니다. 다른 형제들은 숫염소를 잡아 그 피에 요셉의 옷을 적신 후 야곱에게로 가지고 가서 확인시킵니다. 야곱은 요셉의 화려한 옷을 알아보고 요셉이 ‘사나운 들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오열합니다. 여기서 ‘사나운 들짐승’이라는 표현은 형제를 팔아넘기는 자들에 대한 고발이며, 자유인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사람은 ‘사나운 들짐승’과도 같다는 비판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숫염소와 요셉의 옷’으로 야곱을 속인 악한 행위는 오래전에 야곱이 ‘염소와 에서의 옷’을 취해(27:9, 15) 이삭과 에서를 속인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야곱은 자신을 닮은 아들들로 인해 애통한 일을 겪습니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나는 어떤 행동을 해 보았나요?
우리가 십자가를 대하면서도 죄악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것은 십자가에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는 자신의 외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우리의 죗값을 치러야 하셨던 하나님의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죽음을 몰고 가게 한 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애통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계속하여 죄악된 삶을 살아간다면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극도로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 까지 애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죄악을 길을 다시는 걸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억울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가장 사랑받는 자리에서 가장 천한 자리로 옮겨져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지금의 현실을 넘어 실현될 하나님 뜻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