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권위를 확증한 변화산 영광(막 9:2-13)
변화산 사건(막 9:2-8)
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주고받았다.
5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6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7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8 그들이 문득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엘리야로 온 침례 요한(막 9:9-13)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시어,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서로 물었다.
11 그들이 예수께 묻기를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하니,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런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말씀묵상>
예수님이 높은 산에서 영화롭게 변화되신 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심을 다시금 확증합니다. 수난 예고 엿새 뒤에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십니다. 그곳에서 영화로운 용모로 변하신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십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하셨고, 세 분의 대화 주제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눅 9:29, 31)이었다고 알려 줍니다.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짓겠다고 건의합니다(5절). '수난당하시는 예수님'보다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바라는 그의 의중이 묻어납니다. 그때 구름 속에서 에수님의 권위를 선언하시는 하나님 음성이 들립니다. 예수님은 율법(모세)과 예언(엘리야)을 성취하는 그리스도십니다.
내게는 고난당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보는 믿음이 있나요?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 보여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요구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지고 죽으시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정의로우신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인 정의와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또한 우리를 통하여 이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마땅이 드러나야 하고 드러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야 할 삶의 자리는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옆자리 일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 엘리야는 누구인가요?
변화산 사건은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라는 예수님 말씀의 실현입니다(9: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변화산에서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9절). 영적으로 무지한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율법학자들은 메시아보다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고 가르쳤습니다(말 4:5-6). 예수님은 예언된 엘리야가 바로 자신보다 앞서 온 '고난당한 침례 요한'이었다고 밝히십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침례요한도 예수님도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로 침례 요한을,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고난당한 침례 요한, 고난당하신 예수님은 내게 무엇을 교훈하나요?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타남이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나의 기대와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는 것이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신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면 나 또한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가와 상관없이 그분을 거부하고 배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그 기준점을 나 자신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변덕스러우며 시간과 공간안에 갇혀 있어서 판단력이 떨어지며 진정으로 나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들을때는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기를 원하는 사실, 하나님의 마음에 그 기준점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고난의 종으로 오신 주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을 통해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만 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십자가 고난을 거쳐 부활의 영광을 누리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제 삶을 뒤흔드는 어떤 역경과 환난에서도 회복과 구원과 부활이 주님을 소망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