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로 하나 되어 지경을 확장하는 공동체(느 11:22-36)
노래하는 자들에 대한 부가적 설명(느 11:22-24)
22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은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는 웃시이다. 그의 아버지는 바니요, 그 윗대는 하사뱌요, 그 윗대는 맛다니야요, 그 윗대는 미가이다. 웃시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에 노래를 맡은 아삽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이다.
23 노래하는 사람들에게는, 날마다 하여야 할 일을 규정한 왕명이 내려져 있었다.
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가운데서,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가 왕 곁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된 일을 맡아 보았다.
유다와 베냐민 자손의 거주지 목록(느 11:25-36)
25 마을과 거기에 딸린 들판은 이러하다. 유다 자손 가운데서 더러는 기럇아르바와 거기에 딸린 촌락들과, 디본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과, 여갑스엘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에 자리를 잡고,
26 더러는 예수아와 몰라다와 벳벨렛과
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거기에 딸린 촌락들,
28 시글락과 므고나와 거기에 딸린 촌락들,
29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과
30 사노아와 아둘람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 라기스와 거기에 딸린 들판, 아세가와 거기에 딸린 촌락들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힌놈 골짜기까지 장막을 치고 살게 되었다.
31 베냐민 자손은 게바와 믹마스와 아야와 베델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
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 로드와 오노와 대장장이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는 베냐민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말씀묵상>
귀환한 백성이 자율적으로 예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배가 회복되니 찬양을 맡은 자들이 제 역할을 감당합니다. 웃시는 ‘기도할 때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던’ 맛다냐의 증손자입니다(22절; 11:17). 그는 레위인의 감독이 되어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한 이들을 관리합니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시작된 성전 음악 관리자 역할을 대를 이어 수행한 것입니다. 그의 일은 구체적으로 ‘왕의 명령대로’(23절)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일을 정해 주는 것입니다. ‘왕’은 역사적 정황을 볼 때 페르시아 왕을 가리킵니다. 페르시아 왕이 속국 예루살렘 성전의 음악까지 관리했다기보다 이를 관리할 권한을 위임한 것으로 봅니다. 관리인 브다히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페르시아 왕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해 주십니다.
자유롭게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있나요?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과 예배를 받으실 만한 분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자유롭게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환경가운데 있느냐 아니냐 보다 하나님께서 나의 찬양과 예배의 대상이신 것이 믿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진다면 어디에서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과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소망하고 감사해야 할 것은 성령안에서 함께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의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자녀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소속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귀환한 유다와 베냐민 자손의 거주지가 포로기 전과 유사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유다 공동체는 거주지를 확장하며 영토를 회복해 갑니다. 유다와 베냐민 자손 중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10분의 1을 제외한 나머지는 유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서 삽니다. 유다 자손의 거주지는 포로기 이전에 유다 지파가 차지했던 곳의 일부입니다. 베냐민 자손은 옛 유다 지역과 원래 베냐민 지역이던 게바, 벧엘, 라마 등에 거주합니다.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30절)는 여호수아가 유다 지파에게 차지하라고 명령한 모든 지역을 상징합니다(수 15:1~12). 이곳에 ‘장막’을 쳤다는 것은 이전에 차지했던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더불어 하나님이 옛 땅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리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믿음의 행동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믿음이 삶속으로 들어갈 때 신앙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믿음이 따로 있으면 그 믿음은 힘이 없고, 믿음이 없는 삶은 하나님 앞에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출석을 잘 한다고 할지라도 불신자의 생활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삶 속으로 들어가고 삶이 믿음 속으로 들어와서 하나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믿는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믿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믿음은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감정이 충만하다고 믿음도 충만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믿음은 행함을 통해 훈련되고 성장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사는 이유와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함인 줄 압니다. 저와 공동체가 오직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말씀으로 무장하게 하소서. 하나님 백성을 참된 예배자로 세워 가시는 하나님을 마음 다해 사랑하고 경외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