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파괴와 죄의 쓴맛(출 32:15-24)
금송아지와 춤추는 백성을 본 모세는 어떤 행동을 취했나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혼신을 다한 중보 기도로 이스라엘이 진멸되는 것을 막은 후,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와 그 앞에서 춤추는 백성을 보고 진노해 시내산 언약의 정수인 십계명이 적힌 돌판(34:28)을 던져 깨뜨립니다. 돌판의 파괴는 방금 전에 수립된 언약의 파괴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섰던 모세지만(32:11-13), 백성이 자신들의 죄의 결과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해서 보여줍니다(19절). 이어서 모세는 금송아지를 완전히 파괴해 이스라엘 백성이 마시게 합니다. 이는 죄인들 스스로 죄의 쓴맛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한다는 점이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죄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으로 부터 빗나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고자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죄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에 따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 가는 것입니다. 눈에는 그럴싸해 보이는 그 길들의 뒤를 돌아보면 곧 그길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단절된것이 죄의 본질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터 끊어져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삶을 회복해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없는 지옥의 삶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된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죄의 삶을 미워하고 슬퍼하십시오.
모세의 책망에 대한 아론의 대답에는 어떠한 모순이 있나요?
자신이 참여한 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대신해 이스라엘을 돌보아야 했던 아론을 문책합니다(21절). 모세와 달리 아론은 모든 책임을 백성에게 돌립니다. 그는 금송아지를 직접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32:4) 마치 자신은 전혀 잘못이 없는 듯 '이 백성의 악함'(22절)을 지적하고, 백성이 낸 금을 불에 던졌더니 금송아지가 튀어 나온 것처럼 말합니다. 참된 중보자 모세는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백성을 지키려 했지만, 거짓 중보자 아론은 자신이 참여한 죄에 대해서는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모세는 죄가 없으면서도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예표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참여한 죄를 인정하고 겸손히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수많은 신앙의 인물중에 다윗에게 우리가 본받을 점은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알고 하나님앞에 인정하고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는 죄가운데에서 태어나 죄를 행하며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그분을 믿고 사는 길을 열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내 방법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내 능력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나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회개하는 길입니다. 나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행하며, 나의 능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로 회개하는 것임을 알고 먹는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혀 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과 멀어지는 죄를 미워하고 주님과 가까워지는 의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주님앞에 설 수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주님 없이 내 뜻대로, 내 방법대로, 내 힘으로 살아가려는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주님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