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위보다 우선할 사명의 자리(렘 40:1-6)
바벨론 사령관 느부사라단조차 인정한 유다의 멸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됩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느부사라단을 사령관으로 세워 예루살렘을 함락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포로들을 사슬로 결박해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바벨론왕은 예레미야를 선대하고 해하지 말라고 명령했는데(39:11-14) 군사들이 착오해 예레미야를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약 8km 떨어진 라마에서 그를 알아본 느부사라단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느부사라단은 이방인임에도 유다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듯 이방인의 입을 통해서도 확증됩니다. 공의의 심판은 열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열방에 드러냅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는 무엇인가요?
유다의 멸망의 원인을 적국의 사령관이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성읍에 이런 재난을 사전에 하나님이 다 선포하셨는데, 이제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겁니다. 민수기 22장에 발람 예언자를 나귀가 책망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귀를 통해 발람을 책망한 겁니다. 베드로도 새벽 닭소리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도 당신의 뜻대로 부르실 수 있고, 만물도 당신의 바라시는대로 얼마든지 다 부리실 수 있습니다. 환경도 여건도 우리의 삶의 조건도 얼마든지 요리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선한 도구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방인 왕을 심판의 도구로 쓰시고, 적국의 군대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을 통해 당신의 종을 지키시며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모든 사람이 죽거나 잡혀가는 와중에도 자유를 누리며, 유다에서 살든 바벨론에서 살든 최상의 조건에서 살아가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있는 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명자는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자리를 지킵니다.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에게 세 가지 선택 사항을 줍니다. 첫째, 자신과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간다면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바벨론 왕이 세운 유다 총독 그달리야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이는 어느 정도 안전만 보장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남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예레미야가 원하는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달리야가 있는 미스바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유다 백성이 남아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려 한 것입니다. 자신의 평안과 안락을 도모하기보다 영혼을 위한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나는 개인의 안위와 사명 중 무엇을 선택하나요?
우리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한다고 말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고집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오해는 세상이 혼탁할수록,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더욱 신실하게 살아갈수록 심해질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오해를 하든, 또는 예레미야처럼 조롱과 비웃음을 받든 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된 자들만 구원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행하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알고 주님의 말씀에 신실한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감정과 만족과 안위를 위해서 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