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과 선인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서(잠 15:1-15)
분노를 가라앉히는 대답(잠 15:1-7)
1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
2 지혜로운 사람의 혀는 좋은 지식을 베풀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은 말만 쏟아낸다.
3 주님의 눈은 어느 곳에서든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모두 지켜 보신다.
4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5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훈계를 업신여기지만, 명철한 사람은 아버지의 책망을 간직한다.
6 의인의 집에는 많은 재물이 쌓이나, 악인의 소득은 고통을 가져 온다.
7 지혜로운 사람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지만, 미련한 사람의 마음에는 그러한 생각이 없다.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것들(잠 15:8-15)
8 악한 사람의 제사는 주님께서 역겨워하시지만, 정직한 사람의 기도는 주님께서 기뻐하신다.
9 악한 사람의 길은 주님께서 싫어하시지만, 정의를 따르는 사람은 주님께서 사랑하신다.
10 옳은길을 저버리는 사람은 엄한 징계를 받고, 책망을 싫어하는 사람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11 '죽음'과 '파멸'도 주님 앞에서 드러나거늘, 사람의 마음이야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12 거만한 사람은 자기를 책망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지혜 있는 사람을 찾아가지도 않는다.
13 즐거운 마음은 얼굴을 밝게 하지만, 근심하는 마음은 너를 상하게 한다.
14 명철한 사람의 마음은 지식을 찾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음을 즐긴다.
15 고난받는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다 불행한 날이지만,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잔칫날이다.
<말씀묵상>
유순한 대답과 과격한 말은 각각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1절)
의견 차이로 논쟁이 일어날 때, 성도는 유순한 말로 분노를 가라앉혀야 합니다. 과격한 말은 분노를 격동시킬 뿐입니다. 부드러운 말은 생명나무 같아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지키지만, 패역한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지혜로운 자가 온순한 혀로 유순하게 대답하고 자신의 지식을 나누는 이유는 악인과 선인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2-3절). 지혜로운 자는 아버지의 훈계와 경계를 겸손히 듣습니다. 그 결과 이웃과 선한 관계를 유지하고 귀한 재물도 얻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들으시고 분노하는 모습도 보십니다. 날마다 경건을 훈련해 감정이 아닌 말씀을 따르고, 부드러운 혀로 논쟁과 다툼을 그치게 해야 합니다(딤전 6:3-4).
내가 감정을 절제하고 부드럽게 대화할 때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말은 그 표현이 변화무쌍해서 말하는 모습을 조금만 바꾸어도 그 뜻이 정반대가 되기도 하고, 같은 말을 해도 어떤 표정이나 몸짓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말하는 본연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말의 내용의 중요성은 10%가 넘지 않고 나머지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표정, 몸짓, 음색, 말의 고저 등등이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하는 태도 역시 중요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불같은 분노로 과격해진 상대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화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립니다. 어떤 사람이 불같이 화를 내다가, 상대가 아주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격려할 때에 “내가 이러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화를 내는 것을 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제사와 정직한 자의 기도를 어떻게 보시나요?(8절)
악한 일을 일삼으면서 종교적 행위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종교적 형식을 갖추어 드리는 제사를 미워하십니다. 그의 길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배반한 악인은 결국 엄한 징계를 받고 죽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은밀하게 감추어진 스올(무덤 혹은 지하 세계)와 아바돈(파멸의 장소)도 하나님 앞에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 비밀스럽게 행동한 모든 것도 하나님 앞에 드러납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붙들려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럴때 그 얼굴이 항상 빛나고 잔칫날 같은 삶을 누리게 됩니다(13, 15절).
내 마음 깊은 곳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감출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요?
솔로몬 당시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고가 있어야 했고,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집에서부터 성전까지 끌고 가든지, 성전에서 파는 짐승을 사서 드렸습니다. 반면에 기도는 몸만 가서 손을 모으면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의 제사는 미워하시고, 정직한 사람의 기도만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을 받지 않으셨고, ‘정직한 사람’을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제사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것인가, 기도를 드릴 것인가가 하는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우리의 중심이 어떤 사람인가가 하나님께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앞에 정직하게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제 삶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길 원합니다. 부드러운 말로 화평을 심고, 진실한 삶으로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즐거움으로 얼굴이 빛나고, 삶이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