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고난의 흔적, 평화와 용기의 원천(눅 24:36-43)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이 모인 곳에 오셔서 처음 선포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날, 제자들이 모여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일을 서로 나눕니다. 모인 제자들은 열한 제자와 다른 제자들(여인들 포함)과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제자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친히 그들 가운데 나타나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3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통상적인 인사인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강복 선포’(축도)로 쓰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가장 큰 원수인 죽음을 멸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부활의 주님을 의지해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부활의 주님이 선포하신 평화를 의심 없이 받아 누리나요?
사람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 죽음 이후에까지도 평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평안하셨어요?”라고 인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평화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평화의 왕 되시는 주님이 주셔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그분이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믿는 사람에 주시는 평안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못 박히신 손과 발의 흔적을 보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부활체)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녔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십니다. 또 순식간에 먼 거리를 오고 가시며, 닫힌 문이나 벽을 통과하시고(요 20:19, 26), 40일 후에는 승천하십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하며 무서워하자 예수님은 그분의 손과 발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흔적을 그대로 지녔습니다(계 5: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제자들 앞에서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신 것은 그분이 육체적으로 완전히 부활하셨음을 확증합니다. 또한 그분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신다’(임마누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죽음 같은 고난을 통과한 내게 영광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들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은 아닙니다. 세계 어느 곳에 가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다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터전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폭풍이 지난 후에 떠오를 태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신앙의 눈으로만 보여 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 눈을 통하여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요셉도 이 눈을 통하여 고난 뒤에 올 “영광”을 보았습니다. 에스더도 이 눈을 통하여 “담력과 힘”이 생겼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현재의 고난을 보면서 낙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바라보는 영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혹시 지금 고난 중에 있다면 반드시 고난 뒤편에 주님이 주실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주님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으시는 부활의 몸을 입으신 것을 바라봅니다.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의심하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주님을 바라 보며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