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경고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으십시오(렘 36:1-19)
하나님이 말씀을 기록해 백성에게 선포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바른 길을 행하도록 끊임없이 교훈하십니다. 여호와김왕 제4년(주전 605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일러 주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게 하십니다. 감금되어 있던 예레미야는 서기관 바룩을 불러 두루마리에 말씀을 받아 적고 그것을 금식일에 성전에 모인 백성에게 낭독하도록 지시합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명하신 이유는 그분이 작정하신 시판의 경고를 듣고 백성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깊음에도 말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하나님이 침묵보다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때는 아직 돌이킬 수 있는 은혜의 때입니다.
어긋난 길에서 돌이키도록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성경을 얼핏 보면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살리시려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가 재앙을 받지 않고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엄청난 복을 준비하셨더라도, 우리가 악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자리로 돌아와야 준비하신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마치 점쟁이들이 무슨 주문을 외듯 성경에서 복에 관련된 말씀만 달달 외우면서 다닌다고 해서 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이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연결되어 있어야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오고 또 우리를 통해 흘러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룩이 낭독한 두루마리의 말씀을 듣고 고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듣는 이의 심령과 행동을 움직입니다(히 4:12). 바룩이 두루마리에 기록한 하나님이 말씀을 성전에서 낭독할 때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가 듣고 그 내용을 고관들에게 전하자 큰 반향이 일어납니다. 고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기 위해 바룩을 불러들입니다. 바룩은 그들 앞에서 두루마리에 적힌 말씀을 다시 낭독합니다. 심판의 말씀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양심이 살아나니 고관들의 마음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득찹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은 고관들은 행동으로 그 변화를 보입니다. 예레미야를 가두었던 그들이 예레미야와 바룩을 숨겨 주고, 두루마리를 왕에게 가져가는 전달자가 됩니다. 극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생명과 능력의 하나님 말씀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하고 싶나요?
바룩은 왜 위험천만하게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받아 적었을까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왜 마가야는 성전에서 바룩이 낭독할때 들은 모든 말을 고관들에게 전달했을까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왜 고관들은 바룩을 불러 두루마리를 낭독하도록하여 경청했을까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에게 먼저 생명과 능력의 하나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혀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여 기도하는 사람들, 성령께서 내게 거룩한 부담으로 내게 맡기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일회성 이벤트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전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으로 함께 전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열심이 오늘 나를 이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셨음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생명도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서 주님이 예비하신 이들에게 전달되게 하소서.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구주이신 주님께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들려지게 하소서. 성령께서 그들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셔서 주님의 말씀안에 있는 생명의 길로 나아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