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백성의 애통한 간구(시편 137:1-9)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주님의 노래를 청하는 이들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신앙의 자유를 잃어버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는 것은 비극입니다. 이스라엘은 시온(예루살렘)이 복된 장소인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되고야 시온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시온에 대한 그리움과 불순종에 대한 회개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받으셔야 할 찬양을 이방 땅에서 부르지 않으려는 결심으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찬송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위해 부를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성도는 자신의 지식.기술..술 등의 재능을 사람의 만족이 아닌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합니다.
나를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나요?
구원 얻은 성도들은 홀로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존재하게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몸의 지체된 성도는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없는 개인은 신앙의 존립이 불가능합니다. 인체와 같이 교회 역시 성도들 간의 오묘한 조합으로 세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 가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든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 우리의 성격과 기질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능이나 경험도 사용하십니다. 남다른 고통을 겪은 것이나 직업 속에서 경험한 것들도 쓰십니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겪느냐고 하지만, 이것을 잘 회복시키고 난 후에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나이에 따라서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열정과 패기로, 나이가 든 분들은 연륜과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지혜로 섬길 수 있습니다.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분들은 물질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분들은 시간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어느 곳이든 필요한 곳에 쓴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 에돔과 바벨론이 행한 악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상한 마음을 아십니다. 시온이 무너지는 날 하나님 백성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한이 남았습니다. 형제 나라 에돔의 비정함과 포학한 바벨론의 잔인함 때문입니다. 그날의 악행은 하나님의 기억에도 깊이 새겨졌습니다. 에돔은 유단 자손이 패망하는 날 기뻐했습니다. 입을 크게 벌려 원수를 응원하며 기초까지 파괴되어 흔적 없이 멸절되기를 바랐습니다(욥 1:11-14). 바벨론은 아이들을 바위에 메어쳐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원수 갚음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기도로 가슴의 한을 하나님께 쏟으면 공의의 하나님이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내게 한으로 남아 있는 일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해 주시길 간구하나요?
시인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최상의 기쁨으로 여기지 않으면, 자기 혀가 입천장에 붙어도 좋겠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처했던 상황과 같이 포로됨과 같은 극단의 상황이 아니어도, 이와 유사한 고백을 하시는 분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많은 나이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시게 된 분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내가 왜 좀 더 일찍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그 때 자녀들이 그렇게 간곡하게 애원할 때에, 직장동료가 한 번만 교회에 가보자고 했을 때에, 과거에 마음이 그렇게 허전하고, 사는 이유도, 의미도 없을 때에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했더라면 이런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인데... 이제라도 그렇게 살지 않아야 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우리 삶을 정결한 성전으로 가꾸어 가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가정을 새롭게 하시며, 우리가 세워진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를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스라엘백성은 인격적인 모욕과 신앙적인 수치를 당하고 나서야 이전에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한 것이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사무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고, 마음껏 주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방해받지 않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