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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도 죽음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신명기 34:1-12)

Posted by SUKIN HONG on

모세가 죽을 때 건강 상태는 어떠했나요?

유한한 사람의 생각과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다릅니다. 120세가 되었지만 모세는 여전히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은 건강한 상태였습니다(7절). 인간적 관점에서는 새내기 지도자 여호수아보다 경험과 경륜을 겸비한 역전의 노장 모세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주도하는 편이 더 든든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만 보고 숨을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사명을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모세의 무덤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를 신격화하거나 그의 유해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정복보다 더 좋은 ‘안식’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 건강과 능력이 있음에도 하나님이 막으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뜻 보기에는 이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충분한 건강과 능력이 있는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고 느보산에서 죽게 하시는 것을 우리의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불공평하시고 매정하시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평생을 하나님을 믿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그렇게 헌신한 모세가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모세는 일등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모세는 아무런 불평 없이 느보산으로 올라갑니다. 여호수아를 안수하고 백성들에게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소개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고 가나안을 한번 바라보고 죽습니다. 그와 같은 모세의 행동이 참으로 훌륭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한 모세의 삶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모세의 삶 모두를 다 합한 것 보다 묵묵히 느보산에서 죽는 모세의 행동은 몇 배나 더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하여도 모세가 느보 산에서 죽지 아니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그는 절대로 가나안에서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워낙 큰 거목이었기 때문에 그 그늘이 너무 커서 누구도 그 뒤를 이어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세의 그늘을 없이하시기 위하여 모세를 느보산에서 죽게 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모세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스스로 자신의 그늘을 없이하였고 그 때문에 여호수아가 능히 모세의 뒤를 이어 훌륭한 백성의 지도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모세가 특별한 지도자로 평가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사람에 관한 진정한 평가는 그가 떠난 이후에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이후 역사 가운데 다시는 등장하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10절). 무엇을 모세를 위대하게 만들었을까요? 첫째 그는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면해 말씀을 나누는 특별한 관계에 있었습니다(출 33:11). 둘째, 이집트의 바로와 그 백성 앞에서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행했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도 큰 권능으로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셋째, 그는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후계자를 잘 세웠습니다(민 27:15-23). 인류의 구원역사를 계획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그 구원 역사에 쓰임 받은 충성된 지도자였습니다. 

나는 주어진 사명을 다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인물로 평가되고 싶나요?

누구나 한 번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다 모세처럼 아름답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노욕에 사로잡혀 노년을 부끄럽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인생의 결말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네 인생의 결말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우리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업적들도 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헛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헛된 공로의식, 헛된 영광 때문에 인생의 결말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인생의 결말을 보면 그 인생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모세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공로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노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말이 나를 위한 말이 아니라, 두려움이 떠는 말이 아니라, 아쉬움이 가득담긴 말이 아니라 자녀와 형제자매와 이웃을 축복하는 말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사랑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복 주셔서 살아온 인생에 대한 감사와 주님께 드리는 찬양이 넘치게 하소서. 언제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인지 모르기에 하루하루가 이런 인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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