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감당의 필수 요건은 예수님 사랑뿐입니다 ( 요한복음 21:15-25)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질문하셨을까요?
비록 예수님을 배반한 적이 있을지라도 그 죄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사명자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기에 그분의 제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 하셔서 베드로가 긍정의 대답을 세 번 하게 하십니다. 이 과정을 통해 베드로를 과거의 실패로부터 회복시키시고 그의 지위를 복원시켜 주십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마침내 목양 사명자가 됩니다. 이것은 교황이나 사도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누구나 사명을 받게 되며, 그 사명이 무엇이든 사랑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내 능력, 재물, 경험 등 그 무엇보다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예수님은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셔서 함께 다니시면서 친히 그들 사랑하심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사명에도 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내가 다른 그 누구보다, 다른 그 무엇보다, 심지어 나의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근심을 이깁니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제자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을 사랑함이 없다면,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함이 없다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 앞에 설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베드로는 훗날 요한이 어떻게 될지 왜 궁금했을까요?
어떤 사명이 더 좋은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기 교회 안에서 베드로의 순교와 요한의 장수 중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 논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21-22절)은 각자 자신이 받은 사명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이 받은 사명과 비교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8-19절에 암시된 것과 초기 교회 문서들에 따르면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오래 살면서 자신이 듣고 본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을 오랫동안 전하는 것도 귀한 사명입니다. 각자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되 남이 받은 사명을 질투하거나 무시하면 안 됩니다.
나의 사명관은 무엇인지,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수정이 필요한지 정리해 보세요.
사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께 대한 나의 믿음의 순도입니다. 우리는 욥의 이야기를 압니다. 하나님은 그가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하나님의 향한 그의 믿음에 더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욥은 저주를 받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정금과 같이 단련되었습니다. 욥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이룬 어떤 성취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믿음을 갖는 것,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높이고 의지하는 것,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드러내는 것, 심지어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의 사랑이 나를 변화시켰어요. 주님의 사랑이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었어요.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 무엇도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음을 믿어요. 주님 사랑해요. 나를 주님의 사랑 안에서 두려움도 이기게 해주세요. 힘든 오늘의 상황도 견뎌내게 해주세요. 우리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