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신 주님을 따르면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요 8:12-20)
예수님은 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주시고 빛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자신을 ‘생명의 빵’(6:35)이라고 계시하신 예수님은, 초막절에 촛불을 밝히던 성전에서 자신을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냅니다. 예수님의 현존 자체로 어둠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빛이 단순히 유대인만의 빛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4:42)시며 ‘세상 죄’(1:29)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이 빛이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 안에 거합니다. 만약 빛 가운데 행하지 않으면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엡 5:9).
빛 가운데 행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어둠속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어둠속에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 내가 어둠속에 있었고, 고통 속에 있었고, 결핍과 두려움 속에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빛 되신 하나님,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 공급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 있었기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 행한다는 말은 빛 되신 주님, 생명 되신 주님, 공급자 되신 주님, 보호자 되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주님이 살아계셔서 바로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늘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주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인격체 되신 주님과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교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동행할 때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얼굴 표정이 바뀌고, 우리의 말투가 바뀌고, 우리의 삶이 바뀌고, 우리의 인생길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에 대해 증언하셔도 그것이 참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씀을 청종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진리와 멀어집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세상의 빛’이라고 계시하시자 유대인들은 이를 받아들이기보다 그 전달 방식을 문제 삼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홀로 주장하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반증하십니다. 첫째, 자신은 신성이 있는 존재기에 스스로 계시해도 참되다는 것입니다(14절). 둘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판단하기에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입니다(15-16절). 셋째, 자기 계시에 대해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가 증언하니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7-18절). 넷째, 자신의 증언은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 속에서 하는 것이기에 참되다는 것입니다(19절). 말씀을 받는 바른 자세는 완악함을 버리고 겸손히 말씀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마음과 태도로 받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말씀을 올바로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외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살리는 말씀이고,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말씀이고,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면서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으로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나의 기도:
주님! 내가 어둠속에 있을 때 내가 어둠속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 모두가 어둠속에서 두려움과 불안과 고통 속에 사는 것이 당연했고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빛으로 찾아오셔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나와 함께 해 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