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과 포악의 날에 더욱 의지할 하나님(시 22:1-21)
비방과 포악의 날에 더욱 의지할 하나님(시 22:1-21)
하나님 외면과 원수의 조롱(시 22:1-11)
1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그리 멀리 계셔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나의 간구를 듣지 아니하십니까?
2 나의 하나님, 온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하십니다.
3 그러나 주님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4 우리 조상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5 주님께 부르짖었으므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믿었으므로, 그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6 그러나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일 뿐입니다.
7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빗대어서 조롱하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얄밉게 빈정댑니다.
8 "그가 주님께 그토록 의지하였다면, 주님이 그를 구하여 주시겠지. 그의 주님이 그토록 그를 사랑하신다니, 주님이 그를 건져 주시겠지" 합니다.
9 그러나 주님은 나를 모태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의 젖을 빨 때부터 주님을 의지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10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께 맡긴 몸, 모태로부터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11 나를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재난이 가까이 닥쳐왔으나,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원수들의 위협(시 22:12-21)
12 황소 떼가 나를 둘러쌌습니다. 바산의 힘센 소들이 이 몸을 에워쌌습니다.
13 으르렁대며 찢어 발기는 사자처럼 입을 벌리고 나에게 달려듭니다.
14 나는 쏟아진 물처럼 기운이 빠져 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촛물처럼 녹아내려, 절망에 빠졌습니다.
15 나의 입은 옹기처럼 말라 버렸고, 나의 혀는 입천장에 붙어 있으니, 주님께서 나를 완전히 매장되도록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16 개들이 나를 둘러싸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무리가 나를 에워싸고 내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17 뼈마디 하나하나가 다 셀 수 있을 만큼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원수들도 나를 보고 즐거워합니다.
18 나의 겉옷을 원수들이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집니다.
19 그러나 나의 주님,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20 내 생명을 원수의 칼에서 건져 주십시오. 하나뿐인 나의 목숨을 개의 입에서 빼내어 주십시오.
21 사자의 입에서 나를 구하여 주십시오. 들소의 뿔에서 나를 구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말씀묵상>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외면과 원수의 조롱에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외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 15:34)를 연상시키는 시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감정은 시편 기자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는 밤낮으로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하나님은 찬송이라는 왕좌에 앉으시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신뢰해 구원을 얻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원수들은 그를 사람이 아니라 벌레 취급합니다.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조롱합니다. 모든 것을 잃고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으신 분이요, 하나님 외에는 그를 도울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시편 기자처럼 기도할 때 하나님 마음은 어떠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슬픔을 허락하신 이유는 기쁨으로 채워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경험하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리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슬플 때, 고난 받을 때, 사람들로 인하여 상처 받을 때에 해야 할 일은 슬픔으로 자기 연민에 빠져 있거나 고난을 두려워하여 절망하거나 사람들을 미워하며 적대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찾고,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부르짖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기쁨으로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을 때 우리 하나님은 “그래. 됐다. 나의 아들아. 딸아. 내게 어서 오렴. 내 안에서 생명을 누리렴.”하고 기뻐하십니다.
시편 기자가 겪은 고통은 어느 정도였나요?
참된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시편 기자가 힘센 황소와 사나운 사자 같은 원수들에게서 빠져나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의 몸은 물처럼 쏟아지고 모든 뼈는 어그러졌습니다. 마음은 촛물처럼 녹아내렸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진 것입니다. 그는 힘이 옹기 조각처럼 말라 버렸고 갈증이 극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죽음의 진토에 버려두신 것 같았습니다. 악한 무리가 그를 에워싸고 손발을 찌릅니다. 뼈는 앙상하게 드러나고 원수들은 그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은 제비 뽑습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과 수치와 비교할 때 지금 나의 고난은 어느 정도인가요?
우리는 예수님이 분명히 고난과 수치를 겪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고난과 수치를 겪으셨을까요? 힘이 없으셔서 힘센 자들에게 당한 것도 아닙니다. 악한 자들의 계략에 속아서 어이없이 당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잘못 믿어서 배신당한 것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 주신 복음에는 고난이 한 세트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 스스로 선택하셔서 고난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그대는...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딤후 1:8)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복음위하여 고난 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딤후 3:12) 예수님이 복음을 위하여 당하신 고난과 수치에 비하면 나의 고난은 비할 바가 안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당할 자격을 허락받은 것을 기뻐하십시오(행 5:41).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슬픔은 하나님의 기쁨으로 바꿔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고난을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드러내어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고난당할 자격을 주심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 눈에 환히 보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