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신실한 기도, 특별한 신비 체험(단 10:1-9)
노년의 다니엘이 좋은 음식을 삼가고 하나님께 기도한 일이 소년의 때(1장)와 차이가 있나요?
기도와 금식은 닫힌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 제3년(주전 536년)에 다니엘은 앞으로 일어날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고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그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좋은 음식을 마다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1:8-9; 9:3 참조). 다니엘은 세 이레(21일) 동안 다가올 전쟁이 초래할 재앙을 애통합니다(2-3절). 노년에도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은 변함없습니다. 시작할 때 가졌던 믿음과 열정을 끝까지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나이가 들어서도, 높은 지위에 올라서도 처음 가졌던 믿음과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일평생 변치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덕목은 신실함입니다.
내 신앙은 처음과 비교할 때 어떻게 달라져 있나요?
우리의 신앙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 있습니다. 예수님 따로 나 따로의 신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동떨어진 좋은 믿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이란 예수님을 더 잘 아는 것이고, 그 분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지는 것이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더욱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나의 신앙이 주일예배시간에만 필요한 것이라면, 성경공부할 때만 효력이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법칙을 따라 사는 것이라면 나의 믿음은 딱 그만큼의 크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삶의 그 한 부분만을 다스리는 왕이 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이 세상에서 좀 더 잘 사는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셔서 아버지의 일을 나의 일로 삼아 온 세상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으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티그리스강가에서 본 다니엘의 환상과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본 환상은 어떤 면에서 비슷한가요?(행 9:7절 참조).
거룩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은 특권이자 은혜입니다. 티그리스 강가에서 다니엘은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모시 옷을 입고 우바스 금 띠를 띠었습니다(5절). 이는 대제사장을 연상하게 하는 복장입니다(레 6:10; 16:4). 그의 얼굴은 번개 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과 같았습니다. 그는 놋쇠 같은이 빛나는 팔과 발을 가졌고 말소리는 많은 무리의 소리 같았습니다(6절). 그 앞에 서자 다니엘은 크게 압도당해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두려움의 신비' 체험). 다니엘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그의 신비 체험은 수백 년 후 사도 요한이 경험했던 것과 유사합니다(계 1:12-18).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설 때 인간은 자기 존재의 무가치성과 죄성을 깨닫게됩니다. 죄인 된 우리는 거룩하신 주님 앞에 겸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 2:9-11)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군의 주이십니다. 빛나는 모습입니다. 모든피조물의 무릎꿇고 드리는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마음에 합하여 우리가 기도 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통치받기를 사모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나라와 교회가 주님의 주님되심을 인정하며 순복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