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사명과 은사로 견고히 서는 삶(고전 1:10-17)
고린도 성도들이 서로 나뉘어 앞세운 지도자들은 누구인가요?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분쟁’입니다. ‘분쟁’에 해당되는 헬라어 ‘스키스마’는 공관복음에서 옷이 찢어지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마 9:16; 막 2:21). 그리고 ‘뭉치십시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르티조’는 고기 잡는 그물을 ‘깁는’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마 4:21; 막 1:19). 이렇듯 바울은 강한 어조의 단어들로 ‘하나 됨’의 필요성을 부각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 아볼로, 게바 등 지도자들의 이름을 앞세우며 서로 나뉘었습니다. 지도자들은 분쟁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도들은 굳이 그들 이름을 내세웁니다. 이는 지도자의 이름을 이용해 자기 욕심을 이루려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고 나뉠 수 없기에, 교회의 분쟁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분쟁하며 나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동체로 산다는 것은 하나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의 성도가 되어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단지 어떤 동호회나 조직의 일원이 된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머리되신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나 아니면 내가 지지하는 어떤 지도자의 생각을 더 따르게 되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옳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주장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을 따르기를 힘써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공동체가 하나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소수의 사람에게만 침례를 베푼 이유는 무엇인가요?
복음의 본질을 간과하면 공동체 안에 분쟁이나 분파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분파는 자신들에게 침례를 베푼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13절)라는 책망조의 질문을 통해, 바울은 침례를 베푼 일이 분쟁의 소재가 되면 안 된다고 교훈합니다. 바울이 다른 지도자들 이름은 말하지 않고 자기 이름만 언급한 이유는 그들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설립 초기에 소수의 사람에게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침례도 중요하지만 복음 전파는 더 중요합니다. 성도는 분쟁할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에 매진해야 합니다. 분쟁은 우리를 죽이지만, 복음은 살립니다.
공동체 안에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새로워져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고 우리 서로를 화목케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우리를 하나 되기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교회 공동체가 일을 잘해보려는 의도로 서로의 생각을 주장하고 서로의 방법을 앞세우다가 서로 상처를 주고 갈등이 커져서 분열하여 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늘 복음의 본질이 일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모든 담을 무너뜨리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죽기까지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바로 알게 하소서. 내 뜻을 앞세워 교회 공동체가 갈라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일인 것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