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와 연결되는 과거의 허물(창 49:1-7)
탁월하지 못할 르우벤(창 49:1-4)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놓고서 일렀다. "너희는 모여라. 너희가 뒷날에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다.
2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는 모여서 들어라. 너희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3 르우벤아, 너는 나의 맏아들이요, 나의 힘, 나의 정력의 첫 열매다. 그 영예가 드높고, 그 힘이 드세다.
4 그러나 거친 파도와 같으므로, 또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와서 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네가 으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흩어지게 될 시므온과 레위(창 49:5-7)
5 시므온과 레위는 단짝 형제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은 난폭한 무기다.
6 나는 그들의 비밀 회담에 들어가지 않으며, 그들의 회의에 끼여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화가 난다고 사람을 죽이고, 장난삼아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고, 그 분노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들을 야곱 자손 사이에 분산시키고,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흩어 버릴 것이다.
<말씀묵상>
르우벤이 장자의 권리를 박타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야곱은 임종하기 전에 아들들에게 예언전 축복을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알려 주십니다. 야곱은 ‘뒷날에 겪을 일’이라고 말합니다(1절). 지파별로 언급하는 그의 말은 예언적 성격을 띠며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착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라”(2절)라는 말은 지혜로운 교사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야곱은 먼저 르우벤을 언급합니다. 르우벤은 장자로서 특별한 지위와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함으로 인해 장자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맙니다(35:22). 이스라엘 역사는 르우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데, 이는 그의 후손이 약화되어 감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권과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한복음 1:12절에 말합니다.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인 하나님의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인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저 어떤 철학이나 원리나 교리를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진정한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믿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주도한 세겜 사건은 그들의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나요?
시므온과 레위는 레아의 아들들로 세겜 사건의 주동자입니다(34장). 야곱은 그들의 칼을 ‘폭력의 도구’와 ‘혈기’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6절). 세겜 사람들에게 저지른 살인과 폭력은 결국 시므온과 레위의 후손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야곱은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흩어 버릴 것이다”(7절)라고 선언합니다. ‘흩다’(흩어 버릴 것이다)는 ‘바벨’ 사건에도 나오는 말로 징벌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11:4, 8). 야곱의 예언대로 시므온은 유다 지파 내에서 영토를 할당받지만 가나안 정복 시기에 한두 번 나온 후에는 등장하지 않으며(삿 1:3, 17), 레위는 영토를 할당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온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됩니다.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 허물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나는 세상을 정복했으나 내 자신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말은 알렉산더 대왕이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친구인 장군을 죽인 후에 고백한 말이라고 합니다.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라고 말합니다(잠언 16:32). 우리는 최근에 분노와 관련된 감정조절이 안돼서 범죄에까지 이르는 사건들을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분노와 관련된 크고 작은 자신의 감정적인 문제는 그것이 ‘분노’라는 점에서 경중에 관계없이 건강한 정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분노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는 화를 부릅니다. 화를 표현하면 결코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더욱 더 괴로워지고 화가 배로 늘어납니다. 분노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복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모른 채, 오히려 하나님의 복 주심을 가로막는 불순종과 불경건함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아 낼 힘을 주소서. 분노와 혈기를 버리고, 인내와 온유함으로 참된 복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