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 말씀의 능력 경험한 맹인(눅 18:31-43)
예수님이 그분의 고난과 죽음이 예언의 성취임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예언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자 예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앞서 두 차례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셨습니다(9:22,44). 세 번째 예고를 주신 것은 그러한 일이 일어날 때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말씀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들도 주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실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성도는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하나님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됩니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의 계획을 신뢰할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주님을 믿고 제자로 살아가면서 참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주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그 종 예언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신다.”(암 3: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행하실 일들을 미리 계획하시고, 계획하신대로 행하실 일들을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시고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우리 인생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주님의 주권가운데 있으며, 주님이 미리 계획하시고 알려주신 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다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계획이 성취될지를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때로 그 상황이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될 수는 있지만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은 신뢰할 만하며 주님의 뜻대로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눈먼 사람이 더욱 크게 소리 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향하는 길에도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계속됩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한 눈먼 사람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은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능력과 권위를 지닌 ‘왕’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먼 사람에게 잠잠하라고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지릅니다. 예수님인 눈먼 사람을 불러 원하는 것을 물으십니다. 눈먼 사람은 소원대로 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간절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제자들은 메시아의 사역에 무감각했지만, 여리고의 눈먼 사람은 메시아의 능력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내가 애타는 외침, 간절한 믿음으로 주님께 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왜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곤 합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완전하신 보살핌과 보호하심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걱정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주님께서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신 사실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염려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간절히 구할 것을 우리를 위해 무엇을 더 달라거나 이루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이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고,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간절히 구할 것은 주님이 행하신 일들과 행하실 일들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로 볼 수 있으면 된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의 일하심을 보고 알고 믿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가 더 알기를 원합니다. 더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더 듣기를 원합니다. 그 누구보다 주님과 가까이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