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두려움과 인습을 넘어선 진실한 믿음의 고백(요 9:13-34)

Posted by SUKIN HONG on

치유받은 사람과 그의 부모는 각각 바리새인들 앞에서 어떠한 고백을 했나요?

참된 신앙은 결코 주변 상황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치유하신 사건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심문하자 치유받은 사람과 그의 부모는 대조되는 답변을 합니다. 치유받은 사람은 처음에 말한 것과 똑같이, 예수님 말씀대로 했더니 치유되었다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계명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해도 그는 예수님을 “예언자”로 고백합니다. 이에 반해 그 부모는 아들이 예수님께 치유 받았음을 알고도 출교당할 것이 두려워 사실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나 인습, 세상 권력을 두려워하면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게 닥칠 손해를 두려워해 믿음을 저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눈먼 사람으로 태어나 치유받은 사람과 그의 부모는 왜 이런 다른 반응을 보였을까요?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이 사람은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의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눈이 멀어서 태어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정죄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에게 이 세상은 지옥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는 결코 이 세상으로 만족하지 않고 눈이 뜨여 빛이 있는 볼 수 있는 세상, 자신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바로 그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주신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반면에 그의 부모들은 어떻습니까? 자식이 눈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들은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속한 이 사회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사회의 중심인 유대교에서 출교당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출교당하는 것이 그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손해인 것을 믿습니다. 

치유받은 사람의 확고한 믿음의 고백에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교리나 인습에 매이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안식일 치유 기적에 대해 바리새인과 치유받은 사람의 해석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계명을 어겼기에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디서 왔는지 불분명하지만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강조합니다. 치유받은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을 통해 치유받은 사실과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만이 놀라운 기적을 행한다는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치유받은 자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죄 가운데서 태어난 것으로 규정하고는 감히 죄인이 의인인 자신들을 가르치려 든다고 윽박지릅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특정 이념과 교리에 사로잡혀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도,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특정 이념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이 왜 옳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이 모든 것에 종 된 삶에서 해방시켜서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모세의 제자라고 자부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서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실제로는 모세의 말을 믿지도 않고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있고, 그 결과 모세가 예언했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게 되었다고 진단하십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에 머물러 있는 사람만이 진리를 알고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판단은 주님이 하십니다. 다만 우리는 순간순간 주님께 묻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묻고 순종하는 태도 없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안다. 내가 맞다. 네가 틀렸다.”고 확신하며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주님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주님보다 내가 더 맞다.’는 엄청난 교만이고, 그런 태도 자체가 자기 스스로를 주님 보다 높은 자리에 세우는 우상숭배의 태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의 태도가 바로 그런 태도였습니다.

나의 기도: 

주님! 우리에게 주님이 누구신지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주님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소망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주님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이제 주님께 묻지 않고 내 뜻대로 생각하고, 내 맘대로 살아가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아요. 주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 있는 삶인 것을 믿어요.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유일한 길인 것을 믿어요. 주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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