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신 하나님 앞에 한없이 비천한 인생(욥기 25:1-6)
빌닷이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닷의 마지막 발언은 매우 짧습니다. 이에 반해 욥의 발언은 매우 깁니다(26-31장). 단순하고 짧지만 빌닷의 발언에는 분명한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는 연약하고 비천한 인간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함으로 욥의 주장을 반박하려 합니다. 하나님께는 주권과 위엄이 있으며, 그분은 높은 곳에서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분이 부리시는 군대는 셀 수 없고 그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이 '힘'과 '존재 방식' 면에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임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만이 필요할 뿐, 그분을 향한 탄식이나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만 강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간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주권자이시고 그분의 법으로 통치하시는 분이신 것은 맞지만 동시에 우리를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사랑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에 대해 책망하시면서도 불쌍히 여기시며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섬기는 그분의 백성된 우리 역시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하되 사랑으로 이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를 찾아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빌닷의 말에 따르면, 높으신 주님 앞에서 인간이 취할 행동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한 후 빌닷은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주권과 위엄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이나 정결함을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능함과 연약함에 휩싸여 있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보일 태도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달빛이나 별빛도 청명하지 않기에 구더기 같은 인생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그 어떤 주장도 할 수 없습니다. 빌닷은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을 문제 삼으며 욥의 주장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미 엘리바스도 언급한 것입니다(4:17; 15:14). 친구들의 주장이 처음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이는 이제 친구들의 논거에 더는 새로운 것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 뜻에 순종하면서도 때로 탄식하고 질문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까지 보시는 분입니다. 드러나는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할찌라도 그 마음의 중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스르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뜻이 이해되지않으면 순종한다는 것이 쉽지않고 위선적인 행동을 낳게 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과 삶에서 겪게 되는 고난의 고통을 하나님앞에서 있는 그대로 탄식하며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우리의 힘과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모습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주님을 바로 알게 하소서. 우리의 오해와 편견으로 주님을 알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참된 주님의 모습을 보게 하소서.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웃들에게 올바로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앞에 정직하고 겸손히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