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죄와 허물을 내게 알게 하소서(욥기 13:20-28)
하나님과 욥 사이에 '부름'과 '응답'이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욥은 하나님께 변론하러 나서면서 두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합니다(20-21절; 참조. 9:33-34). 정당한 변론을 위해서는 합당한 여건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손이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에게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격과 장악을 의미합니다(1:11; 2:5; 6:9; 10:7 등). 둘째, 하나님이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마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위엄과 권능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행하실 수 있어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그때는 어떤 억압이나 제약 없이 하나님과 욥 사이에 '부름'과 '응답'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22절).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온전한 교제를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사람은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고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해 주시는 방법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동물제사를 통해서 임시적으로 죄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전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대로 그분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메시아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셨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사랑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온전한 교제를 위한 조건이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이고 그분 안에서 그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약속하셨고 실행하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이외에는 하나님과 온전히 교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나 조건은 없습니다.
심한 고난 속에서 자신의 죄가 얼마나 많은지 알려 달라는 욥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욥이 하나님께 말하는 방식은 '탄식'입니다. 욥은 다양한 질문과 요청으로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쏟아 놓습니다. 욥은 먼저 자신의 허물과 죄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23절). 욥은 자신이 죄인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항변하는 것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만큼 큰 죄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 죄가 있다면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욥은 하나님이 얼굴을 감추시고 자신을 '원수'(24절)로 여기시는 이유를 묻습니다. '원수'(히, 오예브)는 욥 이름의 어원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욥은 자신을 '낙엽'과 '마른 검불'(지푸라기)에 비유합니다(25절). 그만큼 약하고 비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욥은 인간 실존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은혜와 긍휼을 바랍니다.
내 죄보다 더 크게 책망받는다고 느낄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당연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자신이 행하지 않은 일로 책망을 받아야 한다면 너무나 답답하고 불의하다고까지 생각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일 경우에는 당연히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의 죄에 관련된 문제라면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욥이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답변듣기를 강력하게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불완전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에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를 경험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알아왔고 대화했고 사랑했던 하나님이 갑자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처럼 생각되고 전혀 다른 분처럼 자신을 대하시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워서 직접 하나님께 그 이유를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앞에 서서 그분을 사랑하며 예배하며 교제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때문이기에 그분과의 관계가 흔들린다고 생각할 때 내가 유일하게 기대하며 구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내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고 어둠과 죽음의 길가운데 방황하고 있을 때에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를 거두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외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주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아래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삶의 목적을 찾고 삶의 방식을 찾고 삶의 능력을 찾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