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며 기다리고 바람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시편 130:1-131:3)
죄로 인해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 하나님 백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난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고, 또 자신의 죄와 허물을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은 죄악의 수렁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하나님께만 있기에 죄인이 사는 길도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납작 엎드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죄로 인한 고통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을 부르고 기다리며 그분의 말씀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1-2, 5절; 107:19-20).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오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신 성품과 구원 능력을 아는 사람은 죄악 중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더욱 간절히 기다립니다. 주님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주님을 기다리는 백성을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십니다.
나는 어떤 상황 때문에 주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나요?
인생길을 걸으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짜기 같은 깊은 곳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그런 상황을 만나면 자포자기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천재지변을 당하거나 예기치 않게 올 때도 있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는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삶, 죄와 허물의 결과로 옵니다. 그 땡에 시인과 같이 간절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삶을 고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눈이 오만한 사람의 삶은 어떠할까요?
하나님 백성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교만하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상관없이 이기적인 욕망과 허영을 좇습니다. 눈이 오만하면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며 땅의 영화를 추구합니다. 자기 분량에 넘치는 큰일, 감당하지 못할 일까지 욕심내서 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니 그의 마음과 삶에 평온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사람의 역량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슥 4:6). 우리는 욕망에 이끌리지 말고 의지적으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때 충만히 채워집니다. 성도가 바랄 영원한 본향은 하나님입니다.
요즘 내가 평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평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때입니다. ‘교만하다’는 단어는 ‘높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교만하다’는 말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보다 자신을 더 높게 여기는 것입니다. 또 오만한 길에 서 있을 때문입니다. ‘오만하다’는 ‘높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대단하게 여겨서, 선을 보라고 해도, 상대가 부족한 부분을 조목조목 집어가며 튕길 때, 그런 사람을 지칭할 때에,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만’과 ‘오만’은 쌍둥이와 같고,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마치 나의 힘으로 된 것인냥 교만하고 오만하면 앞날도 내 힘으로 헤쳐 나아가야 되기 때문에 불안하여 평온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오늘도 하나님께서 세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오만한 길에 서지 않으며, 내 욕망을 이루어줄 허황된 일을 벌이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는 날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오만한 길에 서지 않고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분에 넘치는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영혼이 젖 뗀 아이가 엄마 품에 있는 것과 같이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소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우리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