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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운 판단이 결여된 유화정책(삼하 19:9-15)

Posted by 행복한 말씀묵상팀 on

다윗을 다시 왕으로 모시려는 백성(삼하 19:9-10)    

9 이스라엘 백성은 지파마다 서로 의논이 분분하였다. "다윗 왕은 우리를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었다. 블레셋 사람의 손아귀에서도 우리를 건져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압살롬을 피해서 이 나라에서 떠나 있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운 압살롬은 싸움터에서 죽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다윗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셔 오는 일을 주저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유다 지파와 협상한 다윗(삼하 19:11-15)

11 온 이스라엘이 하는 말이 다윗 왕에게 전달되었다. 다윗 왕은 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말하였다. "유다 장로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어찌하여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시는 일에 맨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12 그들은 나의 친족이요 나의 골육지친인데, 어찌하여 왕을 다시 모셔 오는 일에 맨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13 그리고 아마사에게는, 그가 나의 골육지친이면서도,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사령관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벌을 내리시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고 하더라고 알려 주십시오."

14 이렇게 다윗이 모든 유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같이 자기쪽으로 기울게 하니, 그들이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부하들을 모두 거느리고, 어서 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15 다윗 왕이 돌아오는 길에 요단 강 가에 이르렀는데, 유다 사람들이 왕을 맞이하여 요단 강을 건너게 하려고, 이미 길갈에 와 있었다. 

<말씀묵상>

반란 전쟁이 끝난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의논했나요?

압살롬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고 논의합니다. '의논이 분분하였다'(9절)는 격렬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백성이 다윗과 다른 왕 중 누구를 섬길지 갑론을박하며 논의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옛 업적을 기억하며 다윗을 다시 왕으로 세우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이 선택해 세우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왕을 세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운 압살롬'(10절)이란 표현은 그들의 생각을 잘 표현해 줍니다. 지도자인 다윗과 왕자들의 범죄가 이스라엘을 혼란스럽게 만들자, 백성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심을 잊은 것입니다. 

지도자를 뽑을 하나님께 합당한 지도자를 세워 주시길 먼저 기도하나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지도자를 세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들의 중요한 원동력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모세도 그렇고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산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리더십의 대가로 느헤미야를 존경하고 지도력의 본보기로 삼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개인적인 삶 자체가 경건했고, 기도의 삶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지혜나 인내 기술 등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되는 사람은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도력이 자신도 모르게 학습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에 핵심 세력이던 예루살렘의 유다 지파를 어떻게 대했나요?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그는 모든 지파 백성이 다시 자신을 왕으로 세우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장로들에게 연락해 자신을 모셔 오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유다 지파는 압살롬의 반란에 핵심 세력이었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가 자신의 골육이요 친척이라며 반란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합니다. 게다가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대 장관으로 삼습니다. 이런 유화 정책에 유다 지파는 다시 다윗을 지지하며 영접하러 옵니다. 반란 사건의 잘잘못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관용으로 무작정 덮으려 했던 다윗의 선택은 평화 대신 갈등과 분쟁을 가져옵니다(19:41-43; 20:4-10). 

공의로운 판단이 결여된 유화 정책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싸움도 자주 하고 화해도 자주 합니다. 싸우고 화해를 어떤 경우에는 겉으로는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는데, 진정한 화해는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럴까요? 때로는 나는 화해할 마음적인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명령 때문에 억지로 등 떠밀려 화해를 하거나, 화해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화해하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겉으로의 화해가 아닌 진정한 화해를 이루려면 명령이나 논리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어떻게 하든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을 성취하는 것만을 원한다면 명령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고 감정을 배려한다면, 진정한 화해를 원한다면 명령을 하거나 논리를 앞세우기보다는 겸손을 앞세운 사랑으로써 간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의 기도>

왕이신 하나님!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 백성도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회개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믿고 선포합니다. 공동체에 속한 모든 이가 하나 되어 하나님 뜻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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