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 가장 큰 기쁨,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것(욥기 6:1-13)
괴로움이 바닷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강도는 어떤가요?
잘못된 충고는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더합니다. 욥은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괴로움(고난)'(2절)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아스'는 엘리바스 발언에서는 '분노'(5:2)로 번역되었습니다. 엘리바스는 '분노'가 미련한 사람을 죽인다며 분노를 그치라고 하지만, 욥에게 그것은 '괴로움'일 뿐이고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운 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정제되지 않고 경솔할(거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공격으로 여깁니다(4절). 전능자의 독화살을 맞고 두려움에 사로잡혔기에 자신의 탄식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싱겁고 역겨운 음식은 먹기 어렵고 만지기도 싫듯(6-7절), 욥의 고난은 욥이 생각하기도 싫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고통 때문에 내게 거친 말을 하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람은 잠을 못자서 피곤하면 그만큼 신경이 예민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짜증섞인 거친 말들이 나가기도 합니다. 하물며 인생을 뒤흔드는 큰 고통에 가운데 있을 때 그 사람이 겪고 있을 스트레스나 혼란이나 두려움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관점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판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고통 때문에 거친 말을 하는 사람을 그와 같이 나의 자리에서 나의 관점으로 판단해서 말한다면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간격을 도저히 메꿀 수 없을 것이고 거친 말을 하는 그 사람에게 하는 나의 말 역시 더 거친말이 되어 되돌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 때문에 거친 말을 하는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나의 관점을 내려놓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고통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 곁에 서서 예수님이 그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욥이 간절히 바란 것은 무엇이었나요?
욥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8절). 그가 원하는 것은 죽음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안식입니다. 10절은 난해 구절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죽음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내게 위로가 될 것이다. 나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텐데, 그 이유는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욥은 회개 대신 하나님께 탄식하고 질문하는 길을 택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찾으라'는 엘리바스의 충고를 완전히 거부하는 셈입니다. 욥은 더는 버틸 힘이 없다며 죽음을 갈망하는 이유를 밝힙니다(11-13절).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응답 안에서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확신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게 할까요?
하나님께 오직 나의 소망이 있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보다 더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이 하나님께서 나와 멀리 계신 것처럼 여겨지거나 하나님이 나에게 얼굴을 감추고 숨어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단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소망했고 사랑하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닥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침묵하시고 그에게 얼굴을 감춘 것처럼 여겨질 때 죽음보다도 더 큰 고통이 그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시인들이 간절히 하나님의 얼굴을,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통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쁨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소망하는 이유도 하나님 곁에서 온전한 교제를 누릴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와 주신 주님! 우리의 연약하고 비참한 모습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부둥켜안으시며 우리의 허물과 아픔과 죄와 죽음을 친히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주님의 그 사랑과 희생으로 우리가 살았습니다. 우리가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제는 우리가 주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통은 주님없이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가운데 날마다 걷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