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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 묵상할 영원한 미래 영광(고후 4:13-18)

Posted by 행복한 말씀묵상팀 on

복음의 능력을 확신함(고후 4:13-15) 

13 성경에 기록하기를,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도 믿으며, 그러므로 말합니다. / ㉡시 116:10(칠십인역)

14 주 예수를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세워주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5 이 모든 일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의 결과를 소망함(고후 4:16-18)

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17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18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말씀묵상>

죽음과 같은 고난 가운데서 바울이 고백한 믿음은 어떠한가요?

확신은 역동적인 사역을 가능하게 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확신했기에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믿으며, 그러므로 말합니다.”(13절; 시 116:10)라는 문구는 그의 체험적 진술입니다. 바울은 죽음과 같은 고난을 당했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자신도 다시 살리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큰 유익을 끼칠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의 고난은 결과적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감사와 은혜가 넘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합니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내게 어떤 용기를 주나요?

우리 안에 죽어 있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생명으로 역사하시고자 하실 때 그것을 막고 있는 불신의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옮겨야 하나님이 생명으로 역사하실 때 우리에게 온전한 회복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를 어쩔 수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존심이 죽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보호 장치들이 다 죽을 때 그래도 우리가 감사하고 평안을 잃지 않는 것은 내가 죽으면 우리 안에 부활의 열매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난이 와서 세상 것을 잃을 지라도 그것들이 죽으면 생명이 역사할 것입니다. 

바울이 고난 중에 낙심하지 않고 주목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현재 고난을 이기는 비결은 미래 영광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난 중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고난으로 인해 겉사람은 쇠약해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잠시 받은 가벼운 환난이 후일 비교할 수 없이 영원하고 큰 영광을 이룬다는 진리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겪은 환난은 일시적이지도, 가볍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교하며 사소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현재의 고난에 시선을 두지 않고 영원한 미래의 영광스러운 삶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의 사람이라야 죽음과 같은 고난 속에서도 즐겁게 사명을 감당합니다. 

현재 고난을 잘 극복하기 위해 나는 무엇에 주목해야 할까요?

사형언도를 받은 사형수는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지만 우리들은 반드시 죽는 존재이지만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사형수가 죽음을 기다리는 이유는 사형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들도 이미 죽음이 결정된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 이유는 오늘은 죽음의 날이 아니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사형수와 우리들의 차이를 결정하는 기준은 “새 생명”입니다. 사형수도 오늘 사형집행의 날이 될 수 있고 우리도 오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같은 것이지만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이 주어졌고 우리는 죽어도 그 새 생명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고난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또 영원히 누릴 새 생명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에 우리의 생각에 주목하여 낙심하고 힘겨워하지 않게 하소서.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우리의 겉사람이 늙어가는 것을 슬퍼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생명을 누리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기뻐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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