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가운데 주신 미래 회복의 증표(렘 31:31-40)
시드기야왕이 예레미야를 궁중 감옥에 가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실한 사역자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을 전합니다. 그래서 고난의 길을 가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가감 없이 전했습니다. 시드기야왕이 다스린 지 열째 해 곧 예루살렘 함락을 1년 남짓 앞둔 절박한 순간,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더불어 시드기야왕이 바벨론 왕 앞에서 굴욕적으로 심문당하고 바벨론에 끌려갈 것을 가감없이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궁중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명을 올곧게 감당하는 데는 핍박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삶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내 허물과 죄를 드러내실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예레미야가 이렇게 유다가 바벨론에 망할 것이니, 살고 싶으면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예언을 하고 있으니, 유다의 왕과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예언자로서의 자격을 잃은 자라며 비난했습니다. 그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이나 백성들이 보기에는 하나님 앞에 예루살렘의 보존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처음부터 계속해서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라고만 하는 예레미야의 말이 듣기 싫은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패망의 날이 가까워오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찾으라고 외칩니다. 그가 그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지만, 그렇더라도 그 일을 결코 중단할 수 없습니다. 한 명이라도 살리려면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외쳐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내 허물과 죄를 드러내실 때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반응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미래를 꿈꾸며 소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고향 땅에 있는 사촌 하나멜의 밭을 사라고 명하십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포위되고 예레미야가 궁중 감옥에 갇혔을 때였습니다. 국가가 멸망 위기에 처했는데 밭을 사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밭을 삽니다. 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지불하는 등 통상적 매매 절차를 시행합니다. 이는 미래 회복의 때를 상징하는 증표입니다. 비록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고 백성은 포로가 되겠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고국에서 다시 일사의 삶을 회복할 것입니다. 미래 소망의 증표인 약속의 말씀은 고난 중에 큰 위로입니다.
힘겨운 현실 가운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망의 증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남유다는 현실적으로 이제 곧 멸망할 나라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밭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나이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전하게 하신 말씀의 신실성을 위해서 기꺼이 순종하며 그 밭을 산 것입니다. 그 밭의 이름은 “소망의 씨앗”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유형화시킨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부활 신앙과 영원한 천국을 향한 달음질을 치는 우리 성도들은 그 소망에 합당한 무엇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늘 소망 때문에 기꺼운 마음으로 나누고 베풀고 섬기며 귀히 쓰는 그릇으로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삼게 하소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주님의 신실하심과 반드시 약속을 지키심을 믿고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라도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