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주권에 의한 구원, 하나님 작정에 따른 죽음(눅 13:22-35)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문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멸망의 문은 넓지만, 구원의 문은 좁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24절)라고 하시며, 들어가기를 구하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교제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죄악을 버리고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구원받습니다. 주인이 문을 닫아 버리듯, 구원의 문이 닫힐 때가 올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28절) 곧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고 전파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있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밖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듯,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것입니다. 구원은 주권에 달렸으며, 구원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내가 가려는 길이 넓은 문인지 좁은 문인지를 분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길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신 문이 좁은 문이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좁은 길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예수님과 그분의 길을 사랑하여 그 길을 걷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묻히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삶,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삶인 것을 믿는 삶이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삶입니다. 예수님과 내가 따로 구분되는 삶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의 몸 된 삶이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여전히 내가 나의 삶의 왕 노릇하고 있다면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차 예루살렘이 황폐하리라고 예언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 시대에 갈릴리 분봉왕이었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헤롯이 죽이려 하니 떠나시라고 알려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칭하시며, ‘오늘과 내일’ 계속 사역하시다가 후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째 되는 날’에 살아나 사역을 완수하신다고 하십니다(32절). 또한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을 암시하십니다(33절). 예수님은 헤롯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죽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 하십니다(34-35절). 예루살렘은 예언자를 죽였고, 예수님을 죽일 것이며, 사도들을 죽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거부했기에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면 결국 어떻게 될까요?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 17:3)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예수님을 우리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게 하심으로써 보여주시고 증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그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습니다. 예수님의 대속하심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로 지옥에 가게 됩니다. 바깥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을 믿는 자들은 이제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믿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로,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께 묻고 듣고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