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악이 가득합니다(삿 19:16-30)
기브아 불량배들과 소돔 사람들의 악행은 어떤 점에서 유사한가요?( 19:1-11 참조)
기브아에서 유일하게 레위인 일행을 맞아 준 사람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입니다.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가 그들의 발을 씻기고 먹을 것을 줍니다. 그들이 편히 쉬고 있을 때, 불량배들이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그와 성적인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22절). 이러한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소돔처럼 타락했음을 보여 줍니다(창 19:1-5). 노인은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을 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계속되는 위협에 레위인은 결국 첩(아내)을 불량배들에게 내줍니다.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약육강식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는 음란과 폭력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건강한 공동체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는 사람은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다른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돕고 세우는 일에 동참합니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의 지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 다른 믿는 형제자매들과 전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분의 몸의 지체들로서 서로를 사랑하고 필요를 채우고 세워가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속하여 하나되며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우리의 공동체적 신앙의 원형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께서 서로 하나이신 것과 같이 예수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레위인은 쓰러져 있는 첩을 어떻게 대했나요?(28절; 비교. 19:3)
기브아 불량배들의 모습뿐 아니라 자기 첩(아내)을 대하는 레위인의 모습 역시 충격적입니다. 첩이 불량배들에게 밤새도록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에도 레위인은 편안하게 잠을 청합니다. 날이 밝자 레위인은 길을 떠나기 위해 서두릅니다. 집 문을 열 때 쓰러져 있는 첩을 발견합니다. 그가 첩에게 건넨 말은 "일어나서 같이 가자"(28절)가 전부입니다.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습니다.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첩을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첩의 몸을 열두토막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보냅니다(29절).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끔찍한 사회가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나는 주변 사람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그리고 나 중심으로 대하지 않나요?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죄인의 특징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다른 사들의 마음과 형편을 살피기보다 내 생각과 내 형편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들 자기 자신만을 우선하는 세상은 비참한 세상이고 마치 지옥과 같습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상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셔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고통중에서 나음받기를 원하는 병자를 치료하시는 의원으로 오셨습니다. 죄 가운데서 죽어가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와 죄인된 우리를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낫게 하시고 죄를 깨끗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삶은 이러한 예수님의 삶을 이 세상에 드러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늘 기억해야 할 사실입니다.
오늘의 기도:
죄악 가운데서 죄인으로 태어나 죄를 숨쉬듯이 행하며 죄가운데서 죽어가던 우리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지고 죽으신 주님! 그렇게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죽음에서 다시 사심으로 부활의 소망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가정의 구주가 되시옵소서. 우리 일터의 주인이 되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주님의 몸된 건강한 공동체로 회복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