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규례를 가볍게 여기는 죄(왕하 16:10-20)
예루살렘 성전에 이방 신 제단을 만듦(왕하 16:10-16)
10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을 만나려고 다마스쿠스로 갔다. 그는 그 곳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형과 도본을 세밀하게 그려서,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냈다.
11 그래서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다마스쿠스로부터 보내 온 것을 따라서, 제단을 만들었다.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다마스쿠스로부터 돌아오기 전에 제단 건축을 모두 완성하였다.
12 왕은 다마스쿠스로부터 돌아와서, 그 제단을 보고 제단으로 나아가 그 위로 올라갔다.
13 그리고 거기에서 그가 직접 번제물과 곡식제물을 드렸고, '부어 드리는 제물'을 따르기도 하였다. 또 제단 위에 화목제물의 피도 뿌렸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 놓여 있는 놋제단을 성전 앞에서 옮겼는데, 새 제단과 주님의 성전 사이에 있는 놋제단을 새 제단 북쪽에 갖다 놓았다.
15 아하스 왕은 우리야 제사장에게 명령하였다. "아침 번제물과 저녁 곡식예물, 왕의 번제물과 곡식예물, 또 이 땅의 모든 백성의 번제물과 곡식예물과 부어 드리는 예물을, 모두 이 큰 제단 위에서 드리도록 하고, 번제물과 희생제물의 모든 피를, 그 위에 뿌리시오. 그러나 그 놋제단은, 내가 주님께 여쭈어 볼 때에만 쓰겠소."
16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명령한 대로 이행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를 바꿈(왕하 16:17-20)
17 아하스 왕은 대야의 놋쇠 테두리를 떼어 버리고, 놋대야를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쇠 소가 받치고 있는 놋쇠 바다를 뜯어 내어 돌받침 위에 놓았다.
18 또 그는 앗시리아 왕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주님의 성전 안에 만들어 둔 왕의 안식일 전용 통로와 주님의 성전 바깥에 만든 전용 출입구를 모두 없애 버렸다.
19 아하스가 행한 나머지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20 아하스가 죽어 잠드니, 그를 그의 조상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였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말씀묵상>
아하스가 다메섹 제단 모양의 새 제단을 성전에 만들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되 그분 뜻대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깁니다. 앗수르 왕이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 연합군을 물리치고 다메섹을 점령하자, 아하스는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으로 갑니다. 승리 축하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시리아 왕들이 섬기는 신들의 제단(대하 28:23)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아하스는 그 모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그대로 만들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기존 놋 제단을 옮기고 새롭게 만든 제단으로 교체합니다. 새 제단은 놋 제단보다 크고 화려했을 것입니다. 임의로 제단을 옮기고 교체하는 일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왜곡하는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겨 내 마음대로 바꾸는 일은 없나요?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기준으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시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여기는지를 달아 보심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무겁게 여기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는 자, 영광의 하나님을 세상의 영광보다 더 무겁게 여기는 자를 하나님을 자신의 영광스런 백성으로 드러내실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 일이고, 하나님처럼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일은 하나님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가치있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세상의 약속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그 무게대로 대접하고 있습니까? 먹다 남은 것을 갖다 드리고 쓰다 남은 시간을 드려도 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말씀을 무겁게 듣고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분의 영광에 걸맞게 대접하는 일입니다.
아하스가 성전 기명들을 재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하스는 제단뿐 아니라 성전 기명들도 재배치합니다. 물두멍 받침 옆판을 떼 내고 물두멍 위치를 바꿉니다. 또 놋 소(열두 마리 소 모양) 받침을 없애고 놋 바다를 돌판 위에 둡니다. 전쟁과 앗수르에 바친 공물로 부족한 놋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이렇듯 성전 기명의 양식을 임의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아하스는 안식일에 사용하던 낭실과 왕이 외부로 출입할 때 이용하던 문을 다른 방식으로 만듭니다. 이는 '앗시리아 왕에게 경의를 표하려고'(18절) 행한 조치입니다. 앗수르의 세력이 강성해지니 하나님 섬기는 일에도 앗수르 왕의 눈치를 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결국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요즘 나는 누구의 눈치를 보고 누구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나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가 쉽습니다. 어떤 편이 더 힘이 세어 보이고, 그것이 내 이익을 위해서 더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나라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편을 갈라 뭉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권력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시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어떤 때는 앗수르를, 어떤 때는 이집트를, 또 어떤 때는 다른 나라를 의지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대국의 눈치를 보다가 멸망했습니다. 우리 역시 상황마다 하나님께 가장 먼저 기도하지 않으면 이들처럼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사람을 의지하게 되지 때문입니다. 하나님 눈치만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힘과 공급을 의지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원하는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신앙의 형식보다 경건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게 하시고, 사람의 시선보다 제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이 제 일상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