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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능임을 확증한 시험(삼상 6:1-12)

Posted by 행복한 말씀묵상팀 on

언약궤와 속건제(삼상 6:1-6)  

1 주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 머무른 지 일곱 달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제자리에 돌려보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3 그들이 대답하였다. "이스라엘 신의 궤를 돌려보낼 때, 그냥 보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신에게 속건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병도 나을 것이고, 그 신이 왜 여러분에게서 형벌을 거두지 않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4 사람들이 다시 "그 신에게 무슨 속건제물을 바쳐야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블레셋 통치자들의 수대로, 금으로 만든 악성 종양 모양 다섯 개와 금으로 만든 쥐의 모양 다섯 개를 바쳐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통치자들이 모두 똑같이 재앙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성 종양 모양과 이 땅을 해치는 쥐의 모양을 만들어서 바치고, 이스라엘의 신에게 예를 차리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혹시 여러분과 여러분의 신과 여러분의 땅을 내리치시던 손을 거두실지도 모릅니다.

6 왜 여러분은 이집트 백성과 이집트의 왕 바로처럼 고집을 부리려고 합니까? 이집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가게 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온갖 재앙을 내리신 뒤가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의 권능을 확인함(삼상 6:7-12)

7 그러므로 이제 새로 수레를 하나 만들고,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어미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그 수레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서 집으로 돌려보내십시오.

8 그런 다음에, 주님의 궤를 가져다가 그 수레에 싣고, 여러분이 궤를 가져 온 허물을 벗으려면, 속건제물로 보내는,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작은 상자에 모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 소 두 마리가 가고 싶은 대로 수레를 끌고 가도록 하십시오.

9 두고 보다가, 그 소가 그 궤가 본래 있던 지역인 벳세메스로 올라가면, 이렇게 큰 재앙은 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소가 다른 곳으로 가면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연히 그런 재앙을 당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0 그래서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새끼에게 젖을 빨리는 암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우리에 가두었다.

11 수레에는 주님의 궤를 싣고, 금 쥐와 그들의 악성 종양 모양을 본떠서 만든 물건들도 상자에 담아 실었다.

12 그 암소들은 벳세메스 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걸어갔다. 그 소들은 큰길에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않고, 울음소리를 내면서 똑바로 길만 따라서 갔고, 그 뒤로 블레셋 통치자들이 벳세메스의 경계까지 따라서 갔다. 

<말씀묵상>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려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이겼지만,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언약궤가 머무는 7개월 동안 하나님 손이 재앙으로 치시는 것을 경험하자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그래서 언약궤를 돌려보내기 위해 블레셋 신전의 제사장들과 점치는 이들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보낼 '속건제' 드려야 모든 재앙이 사라지리라고 말해 줍니다.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에 손실을 입힌 경우 값에 5분의 1 더해 배상하며 드리는 제사입니다( 5:15-19). 블레셋이 언약궤를 자신들 땅에 가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했기에 이를 배상하면 하나님이 마음을 돌리시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지만 두려워했기에 하나님 마음을 돌리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경험할 어떤 태도를 취해야 마땅한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경험할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봐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요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에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삶은 힘이 듭니다. 괴롭습니다. 외롭습니다.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그 아픔의 강도는 마치 막 낳은 자식과 생이별을 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싫든 좋든 말씀을 갖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시험했나요?

블레셋 사람들의 마음은 이중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려는 마음과 함께, 하나님을 거부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끝가지 하나님의 권능을 시험합니다. 그들은 나는 암소 마리에게 수레를 메우고 언약궤를 싣습니다. 암소들이 벧세메스로 가면 재앙을 하나님이 내리신 것으로, 다른 길로 가면 우연으로 여기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확실한 징표를 얻기 위해 송아지들을 우리에 가두고 암소의 본능을 자극합니다. 암소들은 울면서도 벧세메스 길로 똑바로 나아갑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재앙이 하나님 권능의 증거임을 확실히 인정하고,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참패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거부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말씀을 굳게 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며 아이들과 헤어지는 아픔까지도 참으며 주를 위해 일 한 후에는, 이 모든 영광을 한 몸에 받을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말씀을 따르는데서 오는 모든 고통과 희생을 알면서도, 궁극적으로 그것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얻을 영광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것입니다. 복음을 지키며 일 한 후의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기쁨의 영광이 아닌 바로 번제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사는 우리의 삶은 애초부터 영광을 받는 삶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더 썩어지고 더 희생하고 그리하여 결국은 번제의 제물이 되는 순간까지 봉사하는 것, 이것이 성경을 품고 사는 ‘올바른 삶’인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시험했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하소서. 완고한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성령의 이끄심에 우리를 내어 맡기며 순종의 길을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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