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헌신, 목숨을 내놓는 중보기도(출 32:25-35)
하나님 편에 선 레위인들이 한 일과 모세의 반응은 무엇인가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는 일입니다. 이에 모세는 "주님의 편에 설 사람"(26절)들을 동원해 3천 명가량을 죽이는 조치를 취합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죄지은 자를 처벌하고, 백성에게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모세 자신의 두 번째 간절한 중보기도(31-32절)를 위한 준비 작업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 직접 심판받는 것보다 모세가 대신 백성을 견책하는 것이 백성에게 훨씬 덜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모세의 부름에 응답한 레위인들이 약 3천 명을 벌하자 모세는 그들을 '자신을 주님께 드렸으니"(29절)라고 칭찬하며 복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부모나 형제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눅 14:26).
'가족 사랑'과 '하나님 섬김' 두 가지가 충돌할 경우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나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깨고 사탄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반역하고 돌아선 죄의 결과는 죽음이 그들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와 마찬가지로 범죄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죽음과 심판 뿐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가족을 사랑한다 할찌라도 이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돌이킴이 없는 가족 사랑은 진정한 가족 사랑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탄을 사랑하여 사탄과 친밀하게 지내는 가족을 그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을 절대로 그들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오도록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으로 호소하여 이끄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두 번째 중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인가요?
모세는 중보자로서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30-32절). 이스라엘의 죄가 '큰 죄'(31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혹시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면 자신도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32절). 하나님께 가장 어려운 일은 의인을 죄인과 함께 벌하시는 것입니다(창 18:23-32). 하나님은 모세의 요청에는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으시고, 대신 오직 죄를 범한 자만 벌하시겠다는 원론적인 말씀만 하십니다(3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과 천사를 보내 주시는 것(23:20-23)까지는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합 3:2).
내 생명과 바꿀 만큼 간절하게 기도한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생명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막 8:36)라고 말씀하시면서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생명이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그렇게 중요한 생명을 어떻게 얻고 유지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답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물, 생명의 빵, 생명의 길" 등으로 표현하시면서 오직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을 따르는 사람만이 생명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막 8:34-35)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생명과 바꿀 만큼 간절하게 기도할 것, 아니 어쩌면 내 생명보다 더 귀하게 구할 것이 바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 삶의 결과일 뿐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탄과 친밀하게 지내기를 거절하고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사탄의 말 듣기를 거부하고 주님의 말씀 듣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을 떠난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알게 하소서.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이 없는 생명은 생명이 아님을 알게 하소서.